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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칼럼] 윤석열·이재명·심상정 세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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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3-22 16:39 조회 65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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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차별과 혐오, 증오 선동의 정치를 부수자’를 주제로 집회를 연 뒤 행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대선은 한국 교육에 가장 잘 적응한 자와 가장 먼 우회로를 걸어온 자의 대결이었다. 한국 교육이 키워낸 최고의 엘리트들이 보여준 반지성과 몰상식, 시대착오적 사고는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교실이 얼마나 미성숙한 엘리트들을 길러왔는지 이번 대선은 선연히 보여주었다.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만큼 발전한다

원래 ‘환멸의 시대’라 했다. 달리 무엇으로 이 시대를 칭할 수 있겠는가. 출판사에서 답이 왔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출판사가 제안한 제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문에 썼다.
“‘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쉬이 희망을 말하지 않되 가벼이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 유토피아와 멜랑콜리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 이것이 이 환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가 모두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계 독일 시인, 볼프 비어만은 말했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아들이다.” 비어만의 ‘절망적 희망’의 심정으로 지난 대선을 돌아본다. 20대 대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을 남겼는가.
첫째, 이번 대선의 본질은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응징이었다. 대통령 탄핵으로 괴멸하던 수구는 민주당의 검을 빌려 민주당을 쳤다. 차도응징한 것이다. 그 결과는 죽어가던 수구의 화려한 부활이다.
둘째, 민주당의 역사에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선거다. 왜 민주당은 혁명을 지켜내지 못할까? 4·19혁명에서 1987년 6월혁명(항쟁)을 거쳐 2016년 촛불혁명까지 민주당은 번번이 혁명의 정신을 배반했다. 민주당은 독재와 싸우는 데는 능했지만, 사회를 개혁하는 데는 무능했다. 혁명의 정치적 과실만 챙겼을 뿐, 혁명의 변혁적 정신을 내던졌다. 민주당은 이제 자신의 역사를 통절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셋째, 여성정치의 부상이 돋보인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여성이 의식적인 정치집단으로서 정치 무대에 올랐다. 이번 선거가 갖는 유일한 긍정적 측면이다. 이것이 반가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여성정치가 곧 진보정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지형을 갖게 된 것은 분단체제가 만들어놓은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구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정치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원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진보적이다.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여성의 대표성과 정당의 진보성이 정확하게 비례한다.
넷째, 미래의 비전이 실종된 선거였다.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 어떤 후보도 자신이 꿈꾸는 사회적 유토피아를 그려 보이지 않았다. ‘실용’과 ‘상식’의 홍수 속에서, ‘소확행’과 ‘심쿵’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이상사회를 주창하는 거대담론은 없었다. 거대위기의 시대이기에 더욱 우려스러운 일이다.
다섯째, 한국 교육의 파탄을 보여주었다. 이번 대선은 한국 교육에 가장 잘 적응한 자와 가장 먼 우회로를 걸어온 자의 대결이었다. 한국 교육이 키워낸 최고의 엘리트들이 보여준 반지성과 몰상식, 시대착오적 사고는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교실이 얼마나 미성숙한 엘리트들을 길러왔는지 이번 대선은 선연히 보여주었다.
선거에 졌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 역사는 어차피 직선적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헤겔에 따르면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 지금 우리는 나선의 후퇴 곡선에 들어섰을 뿐이다. 다음에는 더 큰 원을 그리며 전진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세 후보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부탁한다. 부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우를 범하지 마시라. 대학 시절에 세 명의 군사독재자를 모두 경험한 동시대인으로서 파시즘의 과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거대위기의 미래에도 대비해야 한다. 생태, 신냉전, 불평등의 위기는 5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대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거슬러선 안 된다.
이재명 후보에겐 아쉬움의 말을 전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0.73%의 석패가 아니라, 이재명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재명의 참혹한 삶은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자 정신적 뿌리다. 이것이 선거과정에서 거의 드러나지 못했다. 그는 실용과 통합이 아니라, 개혁과 변화를 외쳤어야 했다. 이재명의 삶이야말로 왜 한국 사회가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지 않는가. 그는 자신의 최고의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심상정 후보에게는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싸웠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그가 진정한 승자다. 그의 처절한 패배만큼 역사가 전진했다.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만큼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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