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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믿음과 구원의 교환, 칸트에겐 ‘종교 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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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4회 작성일 23-10-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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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종교사상 집약 철학적 종교론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
근대 서양철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근대 서양철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

근대 서양철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종교철학 분야에서도 불후의 저작을 남겼다.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1793)가 그것이다. 이 저작은 이성을 통해 종교 비판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 이은 제4비판서로도 불린다. 칸트의 ‘철학적 종교론’이 오롯이 담긴 이 저작이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 전집’의 하나로 나왔다. 김진 울산대 명예교수가 책 전체를 옮기고 상세한 해제를 달았다.
칸트가 이 저작을 집필하던 1790년대 초반은 프로이센 계몽주의의 자유로운 정신이 큰 위기에 부닥친 시기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재위 1786~1797)는 선왕 프리드리히 2세의 계몽정책을 폐기하고 종교와 도덕에 관한 저술의 검열을 강화했다. 1792년 칸트는 ‘철학적 종교론’을 네 편으로 짜 월간지에 싣기 시작했으나 검열에 막혀 연재를 중단했다. 이듬해 칸트는 논문을 완성해 단행본으로 묶은 뒤 쾨니히스베르크대학과 예나대학에 심사를 요청했다. 두 대학이 문제없다는 판정을 내리자 칸트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어 칸트는 프로이센의 반동적 종교정책을 비판하는 ‘만물의 종말’이라는 글을 월간지에 발표했다. 그러잖아도 미운털이 박힌 칸트는 이 글 발표 뒤, 앞서 출간한 저작의 판매금지 처분을 받고 종교론 강의도 금지당했다. 탄압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죽은 뒤에야 풀렸다. 엄중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학문적·종교적 원칙을 고수했던 것인데, 이 저작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에서 칸트의 그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물음을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따위로 제시한 바 있다. ‘순수이성비판’이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출한 책이고 ‘실천이성비판’이 두 번째 물음에 답한 책이라면, 세 번째 물음 곧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에 답한 책이 이 저작이다. 칸트가 희망한 것은 ‘도덕과 행복의 일치’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에 한계를 정함으로써 그 세계 너머에 ‘신앙의 자리’를 놓았고,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도덕과 행복’의 결합을 ‘최고선’으로 상정하고 이 최고선의 실현을 보장하는 ‘신의 존재’를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이 종교론 저작에 이르러 종교 자체의 근거를 이성을 통해 마련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현실의 종교를 엄정한 이성의 도덕법칙으로 검증함으로써 참된 종교의 이념을 추출하고자 했다.
칸트의 이 저작은 서문에서 서로 충돌하는 두 명제를 제시하고 시작하기에 그 해석을 놓고 후대에 무수한 논란이 빚어졌다. 먼저 칸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도덕은 그 자신을 위해서 결코 종교가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순수한 실천이성에 힘입어서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이어 칸트는 말한다. “그러므로 도덕은 불가피하게 종교에 도달하게 되며, 그로써 도덕은 인간의 밖에 있는 막강한 도덕적 입법자라는 이념을 향해 나아간다.” 앞의 문장은 도덕이 전혀 종교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뒤의 문장은 도덕이 필연적으로 ‘도덕적 입법자’ 곧 신을 요청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표면상 상충하는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이 저작을 이해하는 데 관건이 된다.
칸트 사상 전체를 놓고 보면, 겉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명제가 내적으로는 일관성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먼저 첫 번째 명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칸트가 제시한 실천이성의 도덕법칙은 그 도덕법칙을 준수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외적인 목적도 요구하지 않는다. 외적인 목적, 이를테면 신의 은총이나 구원을 추구한다면 그런 도덕법칙은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도덕법칙은 그 자체로 충분하며 따로 종교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 존재의 불완전성 탓에 아무리 노력해도 도덕적 완전성을 이룰 수 없다. 더구나 현실에서 인간의 삶을 보면 도덕과 행복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두 번째 명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도덕적 완성을 향해 무한히 노력해 나가는 도상에 있을 뿐이다. 바로 여기서 종교가 등장한다. 인간이 도덕적 완성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려면, 행복의 은총을 내려주는 도덕적 질서의 주재자 곧 전능한 신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현실의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그 노력에 상응하는 신의 은총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신이 있기에 인간은 끝없는 도덕적 노력의 결과로서 행복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은 불가피하게 종교에 이른다.”
그러나 칸트는 어떤 경우에도 ‘은총에 대한 희망’을 ‘도덕적 완성을 향한 노력’에 앞세우지 않는다. 도덕적 완성을 향해 노력하지 않고 은총만 바라는 현실의 종교를 두고 칸트는 우상숭배·자기기만이라는 혹독한 말로 비판한다. 신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기성 종교의 주장은 칸트에게는 일종의 ‘종교 망상’이며 ‘거짓 신앙’이다. 도덕 없는 믿음은 은총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은총의 희망을 간직하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곧 도덕적 완성을 향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도덕과 행복’이 일치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칸트는 이렇게 현실의 계시종교에 도덕적 이성종교를 대립시킨다. 이 이성종교에서 신은 ‘도덕법칙의 입법자’로 나타난다. 신성성이란 완전한 도덕성과 다르지 않다. 순수한 도덕 위에 세워진 종교 외에 다른 참된 종교는 없다. 현실의 인간은 가톨릭·개신교·이슬람·유대교 같은 다양한 종파를 믿지만, 그 이념에서 보면 단 하나의 종교 곧 도덕적 이성종교가 있을 뿐이다. 계시를 믿고 성서를 믿는 것은 그 믿음의 참됨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 핵심은 도덕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종교 신앙은 단일한 도덕적 종교의 이념을 판별의 기준으로 삼아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으로 가를 수 있다. 그리하여 칸트의 도덕종교는 다양한 신앙 형태를 아우르는 보편종교의 이념적 지평이 된다. 세상에 종교 형태는 많지만, 도덕성이라는 본질에서 보면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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