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슬픔의 장면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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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슬픔의 장면이 의미하는 것
북한인들의 통곡장면은 과거 독일 현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되어 왔다. 김일성, 김정일과 김대중, 김정일과 푸틴, 김정일, 이런 장면들이었다. 첫 번째 장례식 장면은 서방 언론이 보기에는 슬픔을 강하게 표출하기는 했지만 ‘평범한’ 통곡의 장면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부모가 아닌 국가수상의 장례식에 그렇게 강도 높은 슬픔의 표현이 일반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 김정일과 김대중, 김정일과 푸틴의 행렬에서 눈물을 흘리는 북한인의 값싼 눈물작전은 누구에게나 그 근원을 알아 낼 수 없는 진기한 장면임에 틀림없었다. 앞선 기사에서도 눈물작전과 관련해 이색적인 장면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김의 대담장면이 CNN에 잠시 소개되었을 때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이산가족상봉 시 흘리는 눈물에 대해 논평을 한 적이 있었다. 남북대표단이 합석한 자리에서 입을 연 것이었다. “서울 TV에 보니 실향민이 울더군. 그런데‘정말로’울더라고” 라며 김대중 이하 전체 합석자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뜻밖에도 ‘정말로 울고 있는’ 신기한 모습에 대해 한 마디 던진 것이다. 영문자막이 없어 한국인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말의 저의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혹시 그가 실언을 한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북한의 권력층은 TV에 보이는‘바닥인생(Fussvolk)’들의 울음은 연극의 한 장면 같은‘가식의 울음소리’임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결론은 또 다른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 그것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일성 장례식 장면과 동독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의 장례식 장면의 비교에서 나타났다. 북한에서는 알려진 대로 울음의 장송곡이 이어졌으며 몸부림치는 통곡의 바다였다. 그런데 북한대사관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검은 색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곧은 자세로 조문객을 맞는 외교관들의 침착하고 조용한 모습은 평양 시내에서 오열하는 일반시민들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몸을 굽히며 비틀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 엄숙한 장례식을 치르는 서구인과 조금도 다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보면 바닥인생은 몸부림을 쳐야 하고 고위층, 상류 엘리트사회에서는 몸부림이 허용되지 않거나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감정의 발산형태를 보고 역으로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김정일 사망과 관련 독일 현지 언론의 판단과 보도는 과거와는 딴판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이 변이라면 이변이다. 첫 날 보도부터 북한에는 ‘석기시대식 공산주의(Steinzeitkommunismus)’라는 대명사가 붙었다. 또 대부분의 외국인 전문가들은 이 오열하는 모습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했다. ‘통곡’ 이라기보다는 고통에 찌들고 무어라 규정짓기 힘든 신음소리라고 표현했다. 인터넷 댓글에는 ‘연극적 쇼(Schauspielerei)’ 혹은 ‘명령에 따라 터져 나오는 울음(befohlenes Heulen)’, ‘국가기관에 의한 대규모 조작’ 이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걸맞게 기사 제목은 ‘북한의 집단 히스테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붙였다. 외국 언론들은 국내 언론에 비해 더욱 뚜렷하게 핵심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히스테리란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히스테리적 극적 표현력이 강한 여성이 출연하는 통곡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이제 울음은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한계를 넘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려가고 있다.
북한인들의 통곡장면은 과거 독일 현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되어 왔다. 김일성, 김정일과 김대중, 김정일과 푸틴, 김정일, 이런 장면들이었다. 첫 번째 장례식 장면은 서방 언론이 보기에는 슬픔을 강하게 표출하기는 했지만 ‘평범한’ 통곡의 장면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부모가 아닌 국가수상의 장례식에 그렇게 강도 높은 슬픔의 표현이 일반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 김정일과 김대중, 김정일과 푸틴의 행렬에서 눈물을 흘리는 북한인의 값싼 눈물작전은 누구에게나 그 근원을 알아 낼 수 없는 진기한 장면임에 틀림없었다. 앞선 기사에서도 눈물작전과 관련해 이색적인 장면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김의 대담장면이 CNN에 잠시 소개되었을 때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이산가족상봉 시 흘리는 눈물에 대해 논평을 한 적이 있었다. 남북대표단이 합석한 자리에서 입을 연 것이었다. “서울 TV에 보니 실향민이 울더군. 그런데‘정말로’울더라고” 라며 김대중 이하 전체 합석자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뜻밖에도 ‘정말로 울고 있는’ 신기한 모습에 대해 한 마디 던진 것이다. 영문자막이 없어 한국인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말의 저의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혹시 그가 실언을 한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북한의 권력층은 TV에 보이는‘바닥인생(Fussvolk)’들의 울음은 연극의 한 장면 같은‘가식의 울음소리’임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결론은 또 다른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 그것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일성 장례식 장면과 동독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의 장례식 장면의 비교에서 나타났다. 북한에서는 알려진 대로 울음의 장송곡이 이어졌으며 몸부림치는 통곡의 바다였다. 그런데 북한대사관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검은 색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곧은 자세로 조문객을 맞는 외교관들의 침착하고 조용한 모습은 평양 시내에서 오열하는 일반시민들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몸을 굽히며 비틀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 엄숙한 장례식을 치르는 서구인과 조금도 다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보면 바닥인생은 몸부림을 쳐야 하고 고위층, 상류 엘리트사회에서는 몸부림이 허용되지 않거나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감정의 발산형태를 보고 역으로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김정일 사망과 관련 독일 현지 언론의 판단과 보도는 과거와는 딴판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이 변이라면 이변이다. 첫 날 보도부터 북한에는 ‘석기시대식 공산주의(Steinzeitkommunismus)’라는 대명사가 붙었다. 또 대부분의 외국인 전문가들은 이 오열하는 모습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했다. ‘통곡’ 이라기보다는 고통에 찌들고 무어라 규정짓기 힘든 신음소리라고 표현했다. 인터넷 댓글에는 ‘연극적 쇼(Schauspielerei)’ 혹은 ‘명령에 따라 터져 나오는 울음(befohlenes Heulen)’, ‘국가기관에 의한 대규모 조작’ 이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걸맞게 기사 제목은 ‘북한의 집단 히스테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붙였다. 외국 언론들은 국내 언론에 비해 더욱 뚜렷하게 핵심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히스테리란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히스테리적 극적 표현력이 강한 여성이 출연하는 통곡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이제 울음은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한계를 넘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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