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태리와 독일의 승부없는 문화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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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태리와 독일의 승부없는 문화논쟁
지난 7월 EU총회에서는 큰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독일 사민당 출신 슐츠 의원이 이태리의 베르루스코니 수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모욕적인 비난을 가한 데에 있었다. 공식적인 발언에서 이태리 수상의 행태에 대해 마피아 방식 운운했으니 도를 지나친 것이 사실이었다. 이태리인의 치부를 찌른 것이다. 이태리의 수상으로서, 게다가 유럽연합의회 의장에 취임한 첫 날에 이런 비난을 받은 베르루스코니도 이에 질세라 격렬한 반 응으로 맞섰다. 그는 슐츠의원에게 ‘지금 이태리에서 홀로코스트 필름을 제작 중인데 당신은 거기 가서 감시원 역이나 맡으면 알맞겠다.’며 반격을 가한 것이다. 그 후 양국 간에 벌어진 설전과 반응 양태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는 여름 정계의 지루함(Sommerloch)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베르루스코니 수상은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 정치와 개인 사업을 혼돈, 자기 사업을 위해서는 법개정까지도 서슴치 않을 정도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인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마피아와 나치
이태리인이 마피아의 비유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은 나치나 나치즘과 연계, 비유되는 데에 극심한 당혹감을 갖게 마련이다. 사실 이 정도에 달하면 더 이상 합리적인 대화는 이어질 수 없다. 고의적으로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의도나 다름이 없다.
나치언급에 대한 독일 측의 반응 역시 격렬했다. 베르루스코니 수상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그는 슈뢰더 수상에게 전화로 유감의 뜻을 표했을 뿐 적당히 사태를 수습하려고만 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이태리 관광부장관이 개입했다. 그는 이태리에 여행 오는 독일인을 통틀어 모욕하고 비난하는 글을 언론에 투고했는데,‘금발머리 독일인들은 극렬민족주의자로 이태리 해안을 시끄럽게 하며 항시 제일 잘났다고 행세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이태리로 여행 오기 전에 언론을 통해 마피아 살인사건이나 자동차 도난사건에 대해서만 정보를 구해보는 국민이라고 비꼬기까지 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는‘저속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유럽연합의원인 슐츠는 이태리 역사를 모르는 것 같다’고 격렬히 비난하였다. 이 글을 쓴 장관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북부 이태리 정당 출신이다. 그런데 이 관광부장관은 자신이 절대로 반독감정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주장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그 증거로 그는 20여 년간 독일승용차를 타고 있고 자기 부인은 바로 독일출신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이 글에 대해 독일 측에서도 즉각 반격이 이어졌다. 이태리 외무부가 사과를 안 할 경우 슈뢰더 수상의 이태리 휴가계획을 취소하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을 가했다. 결국 장관은 사표를 제출하고 슈뢰더 수상은 이태리 여행을 포기함으로서 닭싸움하듯 이어진 성명전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 수상이 함께 베로나에서 오페라 관람을 했으니 해피엔드로 끝난 셈이다.
이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를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독일공군은 이태리 남부에서 3,300명에 달하는 비행사의 전술훈련을 받아 왔는데 이태리인과의 국민성 차이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공조를 하지 못하겠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차라리 터키지역으로 훈련장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물을 하나 개조하는 데에 10년이 소요되기도 하고 공군용 특수 장비를 주문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전혀 납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이것이 전형적인 ‘이태리식’ 적당주의이다. 독일인들은 2차대전시 이태리 군이 총을 제대로 쏘아보지도 않고 후퇴만 했던 것 역시 전형적인 국민성 탓이라고 말한다. 지난 59년 간 58개의 정부가 취임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정치 역시 매우 혼란스럽지만 그런 와중에도 경제는 독자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특별한 국민임에 틀림없다.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두 국민성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태리인이 독일인을 보는 시각은 이미 로마시절부터 변화가 없었다. 2000년 전 로마 저술가 타키투스(그는 처음으로 ‘독일’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북쪽에서 온 독일인의 높은 도덕의식을 모범으로 삼으라’ 고 추천했다. 괴테도 이태리에는 ‘삶에 생동감은 있지만 성실성이나 규율과 질서가 없으며 권력자는 자기 몫만 챙긴다’ 고 기술했다.
이번에 벌어진 논쟁도 결국은 너무나 극단적인 두 국민성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상이한 문화와 국민성 간의 접근과 융화가 얼마나 힘든 문제인가가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 독일 측의 논평이다.
현재 독일에 취업하러 왔다가 계속 체류 중인 이태리인만도 61만 명에 달한다. 또 지금까지 수십 만 명의 이태리인이 취업목적으로 독일로 이주하고 매년 수십 만 명의 독일인들이 이태리를 방문하면서 이 두 국민은 서로를 ‘잘 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이와는 다른 것이다.
독일인들에게 이태리인은 일하기 싫어하고, 정돈과 질서를 모르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북부 이태리 공업지대는 유럽에서도 가장 경제성장이 빠르고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태리인의 습성이나 의식도 작은 문제에서 부터 차츰 변화가 일고 있으며 독일인들이 과거 이태리를 보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경고성 주의도 관심을 끈다. 예를 들면 여름 휴가철이라도 옷은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 입어야 하며, 원래 시끄럽기로 이름난 이태리인이지만 이제는 소음에 예민해져 해안가에서도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체국이나 은행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질서를 무시하고 새치기를 하는 버릇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태리인이 독일인을 보는 시각 역시 특수하다. 2차 대전시 이태리인 2만 3천명이 독일군에 의해 희생된 것도 이태리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독일인은 처음에는 무기를 들고 그 후에는 DM을 지닌 여행객으로서 침범했다는 평이 그 단면을 나타낸다 하겠다.
돈 때문에 그나마 어느 정도의 친절을 베푼다지만, 그간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선입관이 순식간에 되살아난 셈이다. 한 학자의 지적에 의하면 우리가 선입관이라고 보는 것이 선입관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일인이 없는 이태리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밀접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서 이 두 국민은 작은 일에도 서로 흥분하고 싸움거리를 만들곤 했다. 사랑싸움과 같은 관계일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역시 ‘사랑’ 과 ‘존중’ 간의 갈등으로 정의되며 서로 부호를 달리한 명구가 여전히 유효하다.‘이태리인은 독일인을 존중하면서도 사랑하지는 않으며, 반대로 독일인은 이태리인을 사랑하면서도 존중은 못한다.’ [유럽리포트*2009]
지난 7월 EU총회에서는 큰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독일 사민당 출신 슐츠 의원이 이태리의 베르루스코니 수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모욕적인 비난을 가한 데에 있었다. 공식적인 발언에서 이태리 수상의 행태에 대해 마피아 방식 운운했으니 도를 지나친 것이 사실이었다. 이태리인의 치부를 찌른 것이다. 이태리의 수상으로서, 게다가 유럽연합의회 의장에 취임한 첫 날에 이런 비난을 받은 베르루스코니도 이에 질세라 격렬한 반 응으로 맞섰다. 그는 슐츠의원에게 ‘지금 이태리에서 홀로코스트 필름을 제작 중인데 당신은 거기 가서 감시원 역이나 맡으면 알맞겠다.’며 반격을 가한 것이다. 그 후 양국 간에 벌어진 설전과 반응 양태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는 여름 정계의 지루함(Sommerloch)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베르루스코니 수상은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 정치와 개인 사업을 혼돈, 자기 사업을 위해서는 법개정까지도 서슴치 않을 정도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인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마피아와 나치
이태리인이 마피아의 비유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은 나치나 나치즘과 연계, 비유되는 데에 극심한 당혹감을 갖게 마련이다. 사실 이 정도에 달하면 더 이상 합리적인 대화는 이어질 수 없다. 고의적으로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의도나 다름이 없다.
나치언급에 대한 독일 측의 반응 역시 격렬했다. 베르루스코니 수상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그는 슈뢰더 수상에게 전화로 유감의 뜻을 표했을 뿐 적당히 사태를 수습하려고만 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이태리 관광부장관이 개입했다. 그는 이태리에 여행 오는 독일인을 통틀어 모욕하고 비난하는 글을 언론에 투고했는데,‘금발머리 독일인들은 극렬민족주의자로 이태리 해안을 시끄럽게 하며 항시 제일 잘났다고 행세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이태리로 여행 오기 전에 언론을 통해 마피아 살인사건이나 자동차 도난사건에 대해서만 정보를 구해보는 국민이라고 비꼬기까지 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는‘저속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유럽연합의원인 슐츠는 이태리 역사를 모르는 것 같다’고 격렬히 비난하였다. 이 글을 쓴 장관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북부 이태리 정당 출신이다. 그런데 이 관광부장관은 자신이 절대로 반독감정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주장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그 증거로 그는 20여 년간 독일승용차를 타고 있고 자기 부인은 바로 독일출신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이 글에 대해 독일 측에서도 즉각 반격이 이어졌다. 이태리 외무부가 사과를 안 할 경우 슈뢰더 수상의 이태리 휴가계획을 취소하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을 가했다. 결국 장관은 사표를 제출하고 슈뢰더 수상은 이태리 여행을 포기함으로서 닭싸움하듯 이어진 성명전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 수상이 함께 베로나에서 오페라 관람을 했으니 해피엔드로 끝난 셈이다.
이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를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독일공군은 이태리 남부에서 3,300명에 달하는 비행사의 전술훈련을 받아 왔는데 이태리인과의 국민성 차이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공조를 하지 못하겠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차라리 터키지역으로 훈련장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물을 하나 개조하는 데에 10년이 소요되기도 하고 공군용 특수 장비를 주문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전혀 납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이것이 전형적인 ‘이태리식’ 적당주의이다. 독일인들은 2차대전시 이태리 군이 총을 제대로 쏘아보지도 않고 후퇴만 했던 것 역시 전형적인 국민성 탓이라고 말한다. 지난 59년 간 58개의 정부가 취임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정치 역시 매우 혼란스럽지만 그런 와중에도 경제는 독자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특별한 국민임에 틀림없다.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두 국민성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태리인이 독일인을 보는 시각은 이미 로마시절부터 변화가 없었다. 2000년 전 로마 저술가 타키투스(그는 처음으로 ‘독일’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북쪽에서 온 독일인의 높은 도덕의식을 모범으로 삼으라’ 고 추천했다. 괴테도 이태리에는 ‘삶에 생동감은 있지만 성실성이나 규율과 질서가 없으며 권력자는 자기 몫만 챙긴다’ 고 기술했다.
이번에 벌어진 논쟁도 결국은 너무나 극단적인 두 국민성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상이한 문화와 국민성 간의 접근과 융화가 얼마나 힘든 문제인가가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 독일 측의 논평이다.
현재 독일에 취업하러 왔다가 계속 체류 중인 이태리인만도 61만 명에 달한다. 또 지금까지 수십 만 명의 이태리인이 취업목적으로 독일로 이주하고 매년 수십 만 명의 독일인들이 이태리를 방문하면서 이 두 국민은 서로를 ‘잘 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이와는 다른 것이다.
독일인들에게 이태리인은 일하기 싫어하고, 정돈과 질서를 모르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북부 이태리 공업지대는 유럽에서도 가장 경제성장이 빠르고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태리인의 습성이나 의식도 작은 문제에서 부터 차츰 변화가 일고 있으며 독일인들이 과거 이태리를 보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경고성 주의도 관심을 끈다. 예를 들면 여름 휴가철이라도 옷은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 입어야 하며, 원래 시끄럽기로 이름난 이태리인이지만 이제는 소음에 예민해져 해안가에서도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체국이나 은행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질서를 무시하고 새치기를 하는 버릇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태리인이 독일인을 보는 시각 역시 특수하다. 2차 대전시 이태리인 2만 3천명이 독일군에 의해 희생된 것도 이태리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독일인은 처음에는 무기를 들고 그 후에는 DM을 지닌 여행객으로서 침범했다는 평이 그 단면을 나타낸다 하겠다.
돈 때문에 그나마 어느 정도의 친절을 베푼다지만, 그간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선입관이 순식간에 되살아난 셈이다. 한 학자의 지적에 의하면 우리가 선입관이라고 보는 것이 선입관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일인이 없는 이태리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밀접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서 이 두 국민은 작은 일에도 서로 흥분하고 싸움거리를 만들곤 했다. 사랑싸움과 같은 관계일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역시 ‘사랑’ 과 ‘존중’ 간의 갈등으로 정의되며 서로 부호를 달리한 명구가 여전히 유효하다.‘이태리인은 독일인을 존중하면서도 사랑하지는 않으며, 반대로 독일인은 이태리인을 사랑하면서도 존중은 못한다.’ [유럽리포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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