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변해가고 있는 독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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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변해가고 있는 독일정신
‘빨리빨리’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한국인 특유의 시대정신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에 정반대되는 특성을 가진 국민이 바로 독일인이라고 한다면 아마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In Deutschland geht alles langsam. (독일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라는 명구(?)를 들어 본 교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식당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독일적 특성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천천히’ 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뛰면서 생각한다’ 는 말이 있다. 왜 뛰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도 없이 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천천히’ 라면 행동을 하기 이전에 충분히 생각을 한다는 의미다. 생각해야 할 대상은 다양하다. 왜?, 언제까지?, 결과는?, 중단 한다면? 등등 의문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독일인이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따져가며 준비하는 성격이 독일식이다.‘철저함과 그리고 비판적인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독일인의 국민성이 급격한 선회를 보이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 전환점을 이룬 것은 일본의 원자로 사고였다. 원전사고를 접하자 가장 놀라면서 공포감에 빠진 국민이 독일인이었던 것이다. 지진이라고는 언론 기사를 통해서나 알고 있으며 직접적인 피해란 당해본 적이 없는 독일이다. 핵발전소는 독일에 21개 있다. 이번 핵 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독일정부는 핵발전 완전포기를 선언했다. 7개의 오래 된 핵발전소는 당장 폐쇄하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이에도 불만족이었다. 정부가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가동 후 마지막 순간에 일시에 폐기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순차대로 하나씩 폐기해 나갈 것을 요구하여 이 뜻을 관철시켰다. 지진이 발생한지 불과 석 달 만이라는 초고속으로 독일의 핵 발전 포기문제는 모든 전문위원회 등을 거쳐 추진 결정되었다. 이만하면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 도 당할 수없는 속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급격한 탈 원자력 정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으며 데모는 이어져 갔다. 후쿠시마 원자로에서 9000km 동떨어져 있는 독일에서 25만 명이 반 핵발전 데모를 위해 가두에 나선 것이다. 4천만 명이 거주한다는 사고현장 인근 도쿄에서는 1000여명이 거리에 나왔다니 좋은 비교가 된다. 마침 핵 사고 직후 독일에서 일부 주 의회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녹색당은 50년간 보수당이 집권하던 주정부를 장악하는 이변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녹색이냐 보수냐와 무관하게 모든 당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가며 핵 발전 포기를 선언하기에 바빴다. 우리에게 놀라운 이유는 지금까지 모든 독일인에게서 보아온 특유의 조심성 있고 신중한 행태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뛰고 나서 생각하려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앞선 것이다. 그리고는 비판적인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즉 독일은 핵발전 포기를 선언한 이후에야 그 후유증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핵발전을 포기하면 어디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있을 것인가, 전력은 얼마나 가격이 상승할 것인가 등 많은 의문이 뒤따랐다. 해답은 어디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배까지 차이가 나는 수치도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근본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따지려는 언론이나 전문가는 없었다는 것 역시 기이한 현상이다.
독일의 한 원자력발전소 경영자인 RWE는 일본 핵 발전 사고 직후 주 정부의결에 따라 운행 중인 한 발전소를 폐쇄해야 했다. 그러나 이 직후 정부결정의 위법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중이다. 원자로 운행중이던 3개 기업의 소송으로 2016 년 3월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업에 대한 기본권 박탈여부에 대해 심의중이다. 독일은 무엇 때문에 빨리빨리 정신에 빠지게 된 것인가. 독일인에게 이런 의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근본 원인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사회현상은 또 다른 독일인의 특성인 ‘German Angst’ 에서 동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원자로가 곧 터질 것 같은 Angst에 짓눌린 나머지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원래 외국인들은 독일인을 ‘공포심에 쌓인 민족’이라고 평한다.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는 민족으로 보는 것이다. 미래의 문제, 현실정치, 경제, 환경문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 등등 끝없이 많은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비판하며 이런 혼돈과 불안한 상황을 즐기면서 이와 공존하는 민족성의 소유자라고 한다. 심지어 비판정신을 오락으로 간주하는 민족이라고까지 평가 받는 것이 독일민족이다. 이번 핵 포기 건을 보면 독일인의 판단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단지 무엇엔가 쫓기다 못해 경솔한 속단을 내린 것이 통상적인 관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가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이 따르는 것이다. 이 독일적 현상에 대해 주간지 Zeit 발행인 욥페는 몇 가지 다른 해석을 가하고 있다. 한 가지 그의 지론은 ‘독일인은 지금 걱정거리가 없는 것’ 이 깊은 원인이라고 말한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청년실업이 없고 경제가 번영하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다. ‘걱정이 없으면 그만큼 Angst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Angst는 자연법칙과 같아 그 전체의 합은 일정한 크기를 갖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패닉 상태로부터 자유로울수록 핵 사고에 대한 공포가 크다’ 라는 것이 그의 요점이다. 어쨌든 이 기이한 현상을 놓고 앞으로도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리포트*2012년]
‘빨리빨리’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한국인 특유의 시대정신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에 정반대되는 특성을 가진 국민이 바로 독일인이라고 한다면 아마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In Deutschland geht alles langsam. (독일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라는 명구(?)를 들어 본 교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식당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독일적 특성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천천히’ 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뛰면서 생각한다’ 는 말이 있다. 왜 뛰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도 없이 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천천히’ 라면 행동을 하기 이전에 충분히 생각을 한다는 의미다. 생각해야 할 대상은 다양하다. 왜?, 언제까지?, 결과는?, 중단 한다면? 등등 의문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독일인이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따져가며 준비하는 성격이 독일식이다.‘철저함과 그리고 비판적인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독일인의 국민성이 급격한 선회를 보이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 전환점을 이룬 것은 일본의 원자로 사고였다. 원전사고를 접하자 가장 놀라면서 공포감에 빠진 국민이 독일인이었던 것이다. 지진이라고는 언론 기사를 통해서나 알고 있으며 직접적인 피해란 당해본 적이 없는 독일이다. 핵발전소는 독일에 21개 있다. 이번 핵 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독일정부는 핵발전 완전포기를 선언했다. 7개의 오래 된 핵발전소는 당장 폐쇄하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이에도 불만족이었다. 정부가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가동 후 마지막 순간에 일시에 폐기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순차대로 하나씩 폐기해 나갈 것을 요구하여 이 뜻을 관철시켰다. 지진이 발생한지 불과 석 달 만이라는 초고속으로 독일의 핵 발전 포기문제는 모든 전문위원회 등을 거쳐 추진 결정되었다. 이만하면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 도 당할 수없는 속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급격한 탈 원자력 정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으며 데모는 이어져 갔다. 후쿠시마 원자로에서 9000km 동떨어져 있는 독일에서 25만 명이 반 핵발전 데모를 위해 가두에 나선 것이다. 4천만 명이 거주한다는 사고현장 인근 도쿄에서는 1000여명이 거리에 나왔다니 좋은 비교가 된다. 마침 핵 사고 직후 독일에서 일부 주 의회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녹색당은 50년간 보수당이 집권하던 주정부를 장악하는 이변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녹색이냐 보수냐와 무관하게 모든 당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가며 핵 발전 포기를 선언하기에 바빴다. 우리에게 놀라운 이유는 지금까지 모든 독일인에게서 보아온 특유의 조심성 있고 신중한 행태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뛰고 나서 생각하려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앞선 것이다. 그리고는 비판적인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즉 독일은 핵발전 포기를 선언한 이후에야 그 후유증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핵발전을 포기하면 어디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있을 것인가, 전력은 얼마나 가격이 상승할 것인가 등 많은 의문이 뒤따랐다. 해답은 어디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배까지 차이가 나는 수치도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근본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따지려는 언론이나 전문가는 없었다는 것 역시 기이한 현상이다.
독일의 한 원자력발전소 경영자인 RWE는 일본 핵 발전 사고 직후 주 정부의결에 따라 운행 중인 한 발전소를 폐쇄해야 했다. 그러나 이 직후 정부결정의 위법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중이다. 원자로 운행중이던 3개 기업의 소송으로 2016 년 3월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업에 대한 기본권 박탈여부에 대해 심의중이다. 독일은 무엇 때문에 빨리빨리 정신에 빠지게 된 것인가. 독일인에게 이런 의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근본 원인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사회현상은 또 다른 독일인의 특성인 ‘German Angst’ 에서 동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원자로가 곧 터질 것 같은 Angst에 짓눌린 나머지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원래 외국인들은 독일인을 ‘공포심에 쌓인 민족’이라고 평한다.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는 민족으로 보는 것이다. 미래의 문제, 현실정치, 경제, 환경문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 등등 끝없이 많은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비판하며 이런 혼돈과 불안한 상황을 즐기면서 이와 공존하는 민족성의 소유자라고 한다. 심지어 비판정신을 오락으로 간주하는 민족이라고까지 평가 받는 것이 독일민족이다. 이번 핵 포기 건을 보면 독일인의 판단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단지 무엇엔가 쫓기다 못해 경솔한 속단을 내린 것이 통상적인 관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가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이 따르는 것이다. 이 독일적 현상에 대해 주간지 Zeit 발행인 욥페는 몇 가지 다른 해석을 가하고 있다. 한 가지 그의 지론은 ‘독일인은 지금 걱정거리가 없는 것’ 이 깊은 원인이라고 말한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청년실업이 없고 경제가 번영하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다. ‘걱정이 없으면 그만큼 Angst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Angst는 자연법칙과 같아 그 전체의 합은 일정한 크기를 갖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패닉 상태로부터 자유로울수록 핵 사고에 대한 공포가 크다’ 라는 것이 그의 요점이다. 어쨌든 이 기이한 현상을 놓고 앞으로도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리포트*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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