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혁명은 무엇을 바꿀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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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혁명은 무엇을 바꿀 수 있나?
인간의 조상이라는 직립원인 Homo Erectus에 빗대 지어낸 해학적인 개념으로 Homo Sovieticus를 도입한 인물은 소련 반체제 철학자 시노비에프였다. 정치체제의 변천과정에서 소련혁명 후 소비에트 사회라는 특수 환경에서 태동된 ‘특수 인간형’의 존재를 지목한 것이다.
즉 Homo Sovieticus란 공산주의 하에서 부정적으로 변화되어간 사회현상을 빗대서 창조한 개념이다. 러시아 사회에서 직장인은 책임감, 창의성은 물론 의욕상실증에 걸려 있었고, 국가재산이란 주인이 없는 물건이므로 공장 생산품을 개인이 내다 팔기도 하는 정도로 무질서하고 나태한 사회였는데 이로 인해 국가경제는 만성적인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공산권이 멸망한 후 동구권학자들은 이 ‘소비에트 인간형’ 개념을 동구권 내 포스트커뮤니즘 사회에 나타난 부조리와 연계시켜 이의 요인을 해석하려고 했다. 즉 이 소비에트 인간형이 잔재해 있는 것이 공산권 멸망 후에도 민주주의 발전, 시장경제 발전에 방해 요소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Homo Sovieticus를 논할 당시 사회 부조리는 정치경제 체제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이다.
이와 대비하여 공산권 멸망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유럽국가들의 사회상을 좀 더 상세히 볼 필요가 있는데, 즉 수십 년의 독재가 무너지는 순간 Homo Sovietcus는 색다른 형태로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질서가 붕괴되면서 권력의 공백을 채운 세력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공산정권 하에서도 국가권력의 요직에 있던 부류들이었다. 즉 정권의 엘리트로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무장되어 온 핵심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상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온 혁명가들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을 이상향으로 삼아온 인간형이다.
그런데 정권 몰락 이후 이들의 행각, 이들이 남겨놓은 사회는 너무나 비참했다. 사회 각계는 일찍이 없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약자에 대한 착취, 인권유린 등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갖가지 혐오스러운 형태의 악을 출현시켰다. 마치 야수와 같은 자본주의의 근성을 부활시키는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비리행각이 동독을 제외한 모든 동구권국가에서 동일한 양태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EU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면서 지원받아야 할 지역개발비 지급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국가운영이 흔들릴 정도로 부패가 번져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통째로 악의 도가니 속이었으니 이는 전례 없는 놀라운 사건이다.
루마니아에서 요즘 독일로 원정을 오는 범죄꾼들은 공산권 붕괴 후 무서운 체험을 겪은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주거지였던 도시 하수구에서 살아남은 사회계층이다.
동구권의 몰락은 이상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러시아에서 70년, 동유럽에서 40여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고 이 인간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이상이 거품으로 꺼져가는 순간이었다.
모든 혁명 특히 좌파혁명이 보여주듯이 러시아혁명 초기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가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사회 경제체제의 개혁은 당연하지만 사회변혁의 기본 틀이 되는 인간형 즉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변혁시킬 수 있다는 확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착취에서 해방되는 사회주의가 탄생시키는 새로운 ‘초인간(Uebermensch)’ 은 거짓과 사기, 게으름, 절도, 과음, 잔인성에서 해방된 이상적인 인간형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트로츠키(Trotzki : 공산주의자로 레닌과동시대에 활동했으나 레닌, 스탈린과의 불화로 남미로 망명. 1940년 스탈린 비밀경찰에 암살됨)의 예언은 가장 자신감에 찬 내용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사회의 인간은 더욱 강하고 현명하고 고상하게 됨으로써 평균적인 인간형은 아리스토텔레스, 괴테, 마르크스와 같은 수준의 인간일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Homo Sovieticus는 지나간 40년과 80년에 걸쳐 존립했던 공산주의 사회를 빗대서 창출된 개념이지만 공산권 몰락 후 나타난 사회주의 사회의 참모습을 볼 때 Homo Sovieticus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동유럽의 인간상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지나간 40년, 80년간 인간은 트로츠키가 꿈꾸던 이상적인 인간형에서 멀어져갔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잔인성이 뚜렷한 원초적인 인간형으로 되돌아갔다.
‘야수적인 자본주의’의 본성이 바로 이들 국가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40년간 인간개조를 위한 혁명이 낳은 결과이다.
독일사회에 떠도는 마르크스의 어구가 있다. ‘혁명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변화시킬 수 없다. (Die Revolution kann alles aendern, bloss die Menschen nicht.)’
마르크스의 말이라고 알려진 이 어구가 실제로 그의 말인지는 아직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그가 현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의 입에서 기대 할 수 있는 첫마디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누군가가 꾸며낸 어구인 듯하다. [유럽리포트*2008년]
인간의 조상이라는 직립원인 Homo Erectus에 빗대 지어낸 해학적인 개념으로 Homo Sovieticus를 도입한 인물은 소련 반체제 철학자 시노비에프였다. 정치체제의 변천과정에서 소련혁명 후 소비에트 사회라는 특수 환경에서 태동된 ‘특수 인간형’의 존재를 지목한 것이다.
즉 Homo Sovieticus란 공산주의 하에서 부정적으로 변화되어간 사회현상을 빗대서 창조한 개념이다. 러시아 사회에서 직장인은 책임감, 창의성은 물론 의욕상실증에 걸려 있었고, 국가재산이란 주인이 없는 물건이므로 공장 생산품을 개인이 내다 팔기도 하는 정도로 무질서하고 나태한 사회였는데 이로 인해 국가경제는 만성적인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공산권이 멸망한 후 동구권학자들은 이 ‘소비에트 인간형’ 개념을 동구권 내 포스트커뮤니즘 사회에 나타난 부조리와 연계시켜 이의 요인을 해석하려고 했다. 즉 이 소비에트 인간형이 잔재해 있는 것이 공산권 멸망 후에도 민주주의 발전, 시장경제 발전에 방해 요소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Homo Sovieticus를 논할 당시 사회 부조리는 정치경제 체제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이다.
이와 대비하여 공산권 멸망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유럽국가들의 사회상을 좀 더 상세히 볼 필요가 있는데, 즉 수십 년의 독재가 무너지는 순간 Homo Sovietcus는 색다른 형태로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질서가 붕괴되면서 권력의 공백을 채운 세력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공산정권 하에서도 국가권력의 요직에 있던 부류들이었다. 즉 정권의 엘리트로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무장되어 온 핵심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상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온 혁명가들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을 이상향으로 삼아온 인간형이다.
그런데 정권 몰락 이후 이들의 행각, 이들이 남겨놓은 사회는 너무나 비참했다. 사회 각계는 일찍이 없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약자에 대한 착취, 인권유린 등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갖가지 혐오스러운 형태의 악을 출현시켰다. 마치 야수와 같은 자본주의의 근성을 부활시키는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비리행각이 동독을 제외한 모든 동구권국가에서 동일한 양태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EU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면서 지원받아야 할 지역개발비 지급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국가운영이 흔들릴 정도로 부패가 번져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통째로 악의 도가니 속이었으니 이는 전례 없는 놀라운 사건이다.
루마니아에서 요즘 독일로 원정을 오는 범죄꾼들은 공산권 붕괴 후 무서운 체험을 겪은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주거지였던 도시 하수구에서 살아남은 사회계층이다.
동구권의 몰락은 이상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러시아에서 70년, 동유럽에서 40여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고 이 인간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이상이 거품으로 꺼져가는 순간이었다.
모든 혁명 특히 좌파혁명이 보여주듯이 러시아혁명 초기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가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사회 경제체제의 개혁은 당연하지만 사회변혁의 기본 틀이 되는 인간형 즉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변혁시킬 수 있다는 확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착취에서 해방되는 사회주의가 탄생시키는 새로운 ‘초인간(Uebermensch)’ 은 거짓과 사기, 게으름, 절도, 과음, 잔인성에서 해방된 이상적인 인간형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트로츠키(Trotzki : 공산주의자로 레닌과동시대에 활동했으나 레닌, 스탈린과의 불화로 남미로 망명. 1940년 스탈린 비밀경찰에 암살됨)의 예언은 가장 자신감에 찬 내용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사회의 인간은 더욱 강하고 현명하고 고상하게 됨으로써 평균적인 인간형은 아리스토텔레스, 괴테, 마르크스와 같은 수준의 인간일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Homo Sovieticus는 지나간 40년과 80년에 걸쳐 존립했던 공산주의 사회를 빗대서 창출된 개념이지만 공산권 몰락 후 나타난 사회주의 사회의 참모습을 볼 때 Homo Sovieticus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동유럽의 인간상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지나간 40년, 80년간 인간은 트로츠키가 꿈꾸던 이상적인 인간형에서 멀어져갔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잔인성이 뚜렷한 원초적인 인간형으로 되돌아갔다.
‘야수적인 자본주의’의 본성이 바로 이들 국가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40년간 인간개조를 위한 혁명이 낳은 결과이다.
독일사회에 떠도는 마르크스의 어구가 있다. ‘혁명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변화시킬 수 없다. (Die Revolution kann alles aendern, bloss die Menschen nicht.)’
마르크스의 말이라고 알려진 이 어구가 실제로 그의 말인지는 아직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그가 현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의 입에서 기대 할 수 있는 첫마디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누군가가 꾸며낸 어구인 듯하다. [유럽리포트*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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