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장막을 거둬라, 미국이 보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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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서로 이겼다고 하지만 정작 모두 패자였다. 이토록 잔인하게 국토와 국민들을 짓이긴 전쟁은 없었다. 한반도 전체가 무덤이었다. 상흔이 너무도 넓고 깊어서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도 가슴에 파편이 박혀 있다.
전쟁이 멈춘 이 땅에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부꼈다. 모두 돌아갔지만 미군만은 남았다. 나라를 지켜준 미국이 그저 고마웠다. 포화가 멈춘 후 살펴보니 해방 공간에서 활약했던 군웅이 사라졌다. 민족의 내일을 설계했던 고담준론도 불타버렸다. 오로지 전장의 무용담만이 활개를 쳤다.
달러가 모든 것을 삼켰지만 미국이 있어 든든했다. “‘미군’이라는 단어와 ‘미국’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미군은 지금 이 시간을 ‘벌레의 시간’으로 만들었으나 미군의 고향인 미국, 즉 아메리카라는 단어에는 향기가 풍겨 나왔다.”(노명우 <인생극장>) 진정 한국인이 동경했던 미국은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였다. 미국에 기대니 편했다.
전후 70년은 미군이 지켜준 미국의 시간이었다. 누가 권력을 잡든 한결같이 미국에 머리를 조아렸다. 말만 잘 들으면 독재정권도 귀염을 받았다.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무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따를 것이고, 체질상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
미국에 찍히면 어느 나라 정권도 지구촌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관리하려면 폭력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잘못이나 범죄를 저질러도 자신들은 ‘예외’라고 했다. 이런 예외는 나라의 힘이 약할수록, 정권의 정통성이 없을수록, 민족주의 색채가 엷을수록 기승을 부렸다. 한국에서는 유독 예외가 많았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화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한창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책에 적힌 것들이 사실인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미국 앞에서 한없이 작은 한국’이 더 충격적이었다. 대통령 트럼프나 그 보좌관들은 한반도 평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남·북·미 회담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미국은 남북통일은 물론 종전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에 모든 것이었지만 미국에 한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그럼에도 우리는 비루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분노와 슬픔마저 70년 세월에 풍화되어 둥글어진 것인가. 그 길들여짐이 얼마나 무서운가!
미국의 탐욕과 포식을 준엄하게 꾸짖던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이 홀연 우리 곁을 떠났다. 선생이 녹색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은 지구촌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폭군이었다. 냉전체제가 종식되어 군비증강이나 핵무장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신세계 질서’ ‘새로운 미국 건설’을 내세워 여전히 무기를 개발하고 온갖 분쟁에 개입했다.
선생은 미국의 분별없는 군사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를 개탄했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갈수록 자폐적인 이기심에 갇혀 오히려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고,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주범이 되어가고 있다.” 선생은 미국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맞서 저항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까지 한국이 미국의 전략기지로 있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를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말은 미국에도 ‘공식적으로’ 해야 한다. 밀실을 박차고 나와 국가 대 국가로서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란 장막을 거둬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 보인다. 이제 묘수보다는 정도(正道)를 찾아야 한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변신이 아닌 변태(變態)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보다 더 가난해지더라도 패권주의 미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를 얻는 길은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 할 과정이다.”(동화작가 권정생) 진보정권이 해내야 한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미국의 간섭을 걷어내야 비로소 찾아들 것이다.
안중근과 김구가 포효했던 나라, 김학순과 김복동 할머니가 껴안은 나라, 권정생과 김종철이 거닐던 나라, 김연아와 BTS가 춤추고 노래하는 나라, 그리고 모두에게는 어머니의 나라.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70300005&code=990100#csidxaec89780f98a39f9fa67e050a50c7f7
전쟁이 멈춘 이 땅에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부꼈다. 모두 돌아갔지만 미군만은 남았다. 나라를 지켜준 미국이 그저 고마웠다. 포화가 멈춘 후 살펴보니 해방 공간에서 활약했던 군웅이 사라졌다. 민족의 내일을 설계했던 고담준론도 불타버렸다. 오로지 전장의 무용담만이 활개를 쳤다.
달러가 모든 것을 삼켰지만 미국이 있어 든든했다. “‘미군’이라는 단어와 ‘미국’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미군은 지금 이 시간을 ‘벌레의 시간’으로 만들었으나 미군의 고향인 미국, 즉 아메리카라는 단어에는 향기가 풍겨 나왔다.”(노명우 <인생극장>) 진정 한국인이 동경했던 미국은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였다. 미국에 기대니 편했다.
전후 70년은 미군이 지켜준 미국의 시간이었다. 누가 권력을 잡든 한결같이 미국에 머리를 조아렸다. 말만 잘 들으면 독재정권도 귀염을 받았다.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무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따를 것이고, 체질상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
미국에 찍히면 어느 나라 정권도 지구촌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관리하려면 폭력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잘못이나 범죄를 저질러도 자신들은 ‘예외’라고 했다. 이런 예외는 나라의 힘이 약할수록, 정권의 정통성이 없을수록, 민족주의 색채가 엷을수록 기승을 부렸다. 한국에서는 유독 예외가 많았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화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한창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책에 적힌 것들이 사실인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미국 앞에서 한없이 작은 한국’이 더 충격적이었다. 대통령 트럼프나 그 보좌관들은 한반도 평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남·북·미 회담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미국은 남북통일은 물론 종전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에 모든 것이었지만 미국에 한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그럼에도 우리는 비루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분노와 슬픔마저 70년 세월에 풍화되어 둥글어진 것인가. 그 길들여짐이 얼마나 무서운가!
미국의 탐욕과 포식을 준엄하게 꾸짖던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이 홀연 우리 곁을 떠났다. 선생이 녹색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은 지구촌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폭군이었다. 냉전체제가 종식되어 군비증강이나 핵무장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신세계 질서’ ‘새로운 미국 건설’을 내세워 여전히 무기를 개발하고 온갖 분쟁에 개입했다.
선생은 미국의 분별없는 군사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를 개탄했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갈수록 자폐적인 이기심에 갇혀 오히려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고,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주범이 되어가고 있다.” 선생은 미국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맞서 저항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까지 한국이 미국의 전략기지로 있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를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말은 미국에도 ‘공식적으로’ 해야 한다. 밀실을 박차고 나와 국가 대 국가로서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란 장막을 거둬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 보인다. 이제 묘수보다는 정도(正道)를 찾아야 한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변신이 아닌 변태(變態)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보다 더 가난해지더라도 패권주의 미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를 얻는 길은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 할 과정이다.”(동화작가 권정생) 진보정권이 해내야 한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미국의 간섭을 걷어내야 비로소 찾아들 것이다.
안중근과 김구가 포효했던 나라, 김학순과 김복동 할머니가 껴안은 나라, 권정생과 김종철이 거닐던 나라, 김연아와 BTS가 춤추고 노래하는 나라, 그리고 모두에게는 어머니의 나라.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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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70300005&code=990100#csidxaec89780f98a39f9fa67e050a50c7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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