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불신·불안이 전염시킨 ‘휴지 전쟁’…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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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 현상으로 매대가 텅 비어버린 지난 3월17일 런던의 한 마트 내부. 오죽하면 마트 사업자들이 사재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가중되고 있다. 런던 | 로이터연합뉴스
사재기 현상으로 매대가 텅 비어버린 지난 3월17일 런던의 한 마트 내부. 오죽하면 마트 사업자들이 사재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가중되고 있다. 런던 | 로이터연합뉴스
영국도 결국 방역이 뚫렸다. 감염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영국도 본격적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확산 속도라면 3주 안에 이탈리아의 확진자 수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경제활동도 서서히 멈추고 있다. 자동차 제조 공장이 문을 닫았고, 펍(pub)과 극장, 영화관 출입은 물론 불필요한 여행 등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하라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발표가 있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국민에게 제안하면서 재택근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텔레비전을 켜면 여느 때처럼 ‘코로나19’ 관련 뉴스 속보가 나온다. 시시각각 뉴스가 전해지다 보니 이젠 속보(Breaking News)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과 유럽이 그 중심이라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 이후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전 세계 확진자 숫자, 사망자 소식 그리고 정부의 다양한 발표와 조치 상황을 전하느라 바쁘다.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시민들
사재기는 시스템의 붕괴라는데
마트에선 휴지 한 봉지를 놓고
어르신들끼리 언성 높여 다툰다
마스크 쓴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
극단적인 인종차별로 이어져
공포만 키운다던 마스크를
영국인도 하나둘 쓰기 시작했다
축구가 삶의 일부분인 나라
사람들 얼굴엔 그늘이 가득하다
교민들은 연락 주고받으며
차분히 폭풍의 시간을 지난다
문제는 많은 영국 시민들이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부의 확진자 발표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언론의 실시간 뉴스를 바탕으로 국가별 확진자 수치를 비교하며 영국 내 확진자 수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일본의 아베 총리와 영국의 존슨 총리가 비슷한 태도로 코로나19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이 동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다. 현재 영국의 모바일 세상에서는 정부를 조롱하는 콘텐츠가 극성이다.
그래서일까. 지난주 존슨 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솔직함과 투명성, 그리고 대중에 대한 완전한 정보 공개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몰라도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놓고 모든 국민이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하고, 가까운 가족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적나라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정부는 기침이나 콧물과 같은 감염이 의심될 만큼 확실한 증상이 아니라 발열 정도의 상태에서는 NHS(국가의료시스템)와 GP(공중보건의료)를 방문하지 말고,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하라고 권고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환자들로 인해 실질적 의료 사고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가 NHS의 환자 수용 가능 수치를 맞추기 위하여 감염 환자 대응 수칙을 발표하고, 대중 소통 방식을 투명한 정보 공개로 전환한 것이라고 언론은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적극적 방역은 포기하는 대신(이미 지역사회까지 뚫렸다고 판단되므로) 의료체계의 붕괴를 막고 집단면역(Herd Immunity)의 기대감으로 전염병 감염 확산의 피크타임(Peak time)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그러나 존슨 총리의 담화 이후 젊은층이 불신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최고 의료책임자의 집단 면역에 대한 결정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데 국민을 실험쥐로 생각하는 검증되지 않은 조치를 실행하였다며 논란이 거세다. 또한 상대적으로 치사율이 높은 노인층이나 면역력이 취약한 기성세대의 불안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트에서는 사재기(Panic buying) 현상이 나타나고 언론은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로컬 마트를 갔다. 어르신들끼리 대형 휴지 봉지를 들고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나 역시 분명히 집에 휴지가 충분히 있는 것을 알면서도 휴지를 사야 할 것만 같았다. 온라인과 모바일 앱을 통한 생필품 구매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재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24시간 내내 전해지다 보니, 사재기가 줄기는커녕 가속화하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화장실 휴지가 가장 먼저 동이 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쌀, 김치, 라면과 같은 기본 식량이 사재기의 대상인데, 유럽과 미국은 화장실 휴지가 제일 먼저 팔리고 있다. 영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함께 구매하게 된다는 의견, 불필요한 공포와 일반적인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방송에 출연한 한 심리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위기에는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데, 휴지의 포장 봉지가 ‘대량 저장’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은 5월 말에서 6월이나 돼야 감염자가 정점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 모임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폐쇄조치 시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고, 실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도 있었다. 지난주 뉴스에서는 런던의 한 학부모가 학교에서 폐쇄 결정을 내지 않자 직접 학교로 가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정부는 감염률이 정점에 다다르기 전의 폐쇄조치는 무의미하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한 번 폐쇄를 하면 3개월 이상 지속해야 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상황. 직장을 다니는 급여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동시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 또한 부담스럽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지난 수요일, 학교 폐쇄조치 결정이 내려졌다.
요즘에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거리에 사람이 없다. 3월16일 기준, 런던의 대중교통 이용률이 전주 대비 지하철 19%, 버스 10% 감소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런던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단체 이벤트도 모두 잠정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콘서트나 이벤트 같은 행사나 모임(Gathering)도 금지 조치가 발표되었다. 이 때문에 런던에 오기 전부터 기대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의 프리미어 리그가 경기 3일 전에 ‘리그 일정 전면 중단’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티켓 구매 후 밤잠 설치며 기다렸는데 하필 직전에 취소가 되니 더욱 허탈했다. 하지만 영국인 친구들 앞에서 이런 불만은 얘기조차 꺼낼 수 없다. 그들에게 퇴근 후 펍에 모여 맥주 한잔과 함께 축구 경기를 즐기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상이다. 이 즐거움이 사라지니 요즘 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하다. 스포츠 경기와 문화 이벤트가 일상에서 차지하던 비중을 ‘리그 중단 결정’ 이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런던대학교로부터 e메일이 도착했다. 리딩 위크(부족한 과제 수행이나 독서량을 채우라며 학기 중간에 제공하는 방학)를 연장하고, 대면 수업은 중단한 채로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알게 된 친한 한국인 동생은 다음주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함께 학부 과정에 다니던 중국 학생들은 절반 가까이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석사 과정 동기들이 함께하는 채팅방에서는 연일 학교의 방침에 대해 격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학생들은 매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반면, 미국인 동기들은 그나마 미국보다는 영국이 안전하다며 자국에 대한 조롱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이렇듯 런던에 있는 유학생들은 학교의 수업 중단과 온라인 수업 전환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딩 위크 이후 수업환경 개선을 위한 교수들의 파업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가 문까지 닫으면 학생들의 수업받을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환불을 요구하던 분위기였는데,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제는 학교가 빨리 문을 닫아야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며 학교의 조치에 항의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에서 현재 가장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 인종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학생에 대한 지하철 내에서의 무차별 폭행 사건이 이슈가 되고, 해당 학생은 BBC에도 출연해 억울함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영국인들의 기저에 깔린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코로나19와 결합되면서 겉으로 표출되는 계기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처음 인종차별이 논란이 된 계기는 ‘마스크’ 때문이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주로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으로 오히려 홀대와 눈총을 받는 상황이 생길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을 유도하는 수단으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고 싶어서 거리로 나가서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학교 과제로 ‘마스크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라는 주제로 영상을 제작했다. 마스크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문화적 차이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우선은 코로나19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달랐다. 한국에서 발병률과 사망자 숫자가 치솟을 무렵만 하더라도 이곳 영국은 아시아 상황을 잘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해 무던했다. 대다수가 그저 감기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영국인들은 마스크를 사용하는 이유부터 달랐다. 기본적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이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영국 친구들은 ‘마스크는 병원과 같은 곳에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100년 전 있었던 스페인독감 이후에 ‘팬데믹’ 현상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유럽에서는 이제야 전염병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고, 이들 입장에서는 마스크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미디어에서도 여전히 공기 중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마스크는 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공포를 전염시키는 수단일 뿐이라고 알리고 있다. NHS도 손 씻기의 중요성 위주로 상황을 알리다 보니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밌는 것은 최근 들어 마스크를 쓴 유럽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교민사회는 매우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 두려운 상황이 진행되고 있어도 모두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 실시간으로 유학생 동생들, 한국에서 파견 나온 직장인들, 오랫동안 거주 중인 교민들과 연락 중이다. 각자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하게 유지하면서 주어진 수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이렇듯 대처 방안 및 현실적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정부와 NHS에 대한 불신이 퍼지면서 불안이 진행되고 미디어가 전해주는 소식이 공포를 확산하고 있는 현실. 나는 그 중심인 유럽, 그중에서도 런던에서 살고 있다. 스트레스는 많지만 일상의 삶을 평범하게 지속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상황도 언젠가는 끝이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NHS의 ‘손을 열심히 씻으세요’ 권고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10600035&code=940100#csidx25bceb76e6760cc9b6364fed13392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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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 현상으로 매대가 텅 비어버린 지난 3월17일 런던의 한 마트 내부. 오죽하면 마트 사업자들이 사재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가중되고 있다. 런던 | 로이터연합뉴스
영국도 결국 방역이 뚫렸다. 감염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영국도 본격적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확산 속도라면 3주 안에 이탈리아의 확진자 수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경제활동도 서서히 멈추고 있다. 자동차 제조 공장이 문을 닫았고, 펍(pub)과 극장, 영화관 출입은 물론 불필요한 여행 등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하라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발표가 있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국민에게 제안하면서 재택근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텔레비전을 켜면 여느 때처럼 ‘코로나19’ 관련 뉴스 속보가 나온다. 시시각각 뉴스가 전해지다 보니 이젠 속보(Breaking News)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과 유럽이 그 중심이라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 이후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전 세계 확진자 숫자, 사망자 소식 그리고 정부의 다양한 발표와 조치 상황을 전하느라 바쁘다.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시민들
사재기는 시스템의 붕괴라는데
마트에선 휴지 한 봉지를 놓고
어르신들끼리 언성 높여 다툰다
마스크 쓴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
극단적인 인종차별로 이어져
공포만 키운다던 마스크를
영국인도 하나둘 쓰기 시작했다
축구가 삶의 일부분인 나라
사람들 얼굴엔 그늘이 가득하다
교민들은 연락 주고받으며
차분히 폭풍의 시간을 지난다
문제는 많은 영국 시민들이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부의 확진자 발표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언론의 실시간 뉴스를 바탕으로 국가별 확진자 수치를 비교하며 영국 내 확진자 수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일본의 아베 총리와 영국의 존슨 총리가 비슷한 태도로 코로나19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이 동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다. 현재 영국의 모바일 세상에서는 정부를 조롱하는 콘텐츠가 극성이다.
그래서일까. 지난주 존슨 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솔직함과 투명성, 그리고 대중에 대한 완전한 정보 공개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몰라도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놓고 모든 국민이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하고, 가까운 가족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적나라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정부는 기침이나 콧물과 같은 감염이 의심될 만큼 확실한 증상이 아니라 발열 정도의 상태에서는 NHS(국가의료시스템)와 GP(공중보건의료)를 방문하지 말고,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하라고 권고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환자들로 인해 실질적 의료 사고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가 NHS의 환자 수용 가능 수치를 맞추기 위하여 감염 환자 대응 수칙을 발표하고, 대중 소통 방식을 투명한 정보 공개로 전환한 것이라고 언론은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적극적 방역은 포기하는 대신(이미 지역사회까지 뚫렸다고 판단되므로) 의료체계의 붕괴를 막고 집단면역(Herd Immunity)의 기대감으로 전염병 감염 확산의 피크타임(Peak time)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실시간 뉴스가 쏟아지는 영국에선 더 이상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 | AP연합뉴스·이성배 제공
그러나 존슨 총리의 담화 이후 젊은층이 불신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최고 의료책임자의 집단 면역에 대한 결정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데 국민을 실험쥐로 생각하는 검증되지 않은 조치를 실행하였다며 논란이 거세다. 또한 상대적으로 치사율이 높은 노인층이나 면역력이 취약한 기성세대의 불안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트에서는 사재기(Panic buying) 현상이 나타나고 언론은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로컬 마트를 갔다. 어르신들끼리 대형 휴지 봉지를 들고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나 역시 분명히 집에 휴지가 충분히 있는 것을 알면서도 휴지를 사야 할 것만 같았다. 온라인과 모바일 앱을 통한 생필품 구매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재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24시간 내내 전해지다 보니, 사재기가 줄기는커녕 가속화하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화장실 휴지가 가장 먼저 동이 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쌀, 김치, 라면과 같은 기본 식량이 사재기의 대상인데, 유럽과 미국은 화장실 휴지가 제일 먼저 팔리고 있다. 영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함께 구매하게 된다는 의견, 불필요한 공포와 일반적인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방송에 출연한 한 심리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위기에는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데, 휴지의 포장 봉지가 ‘대량 저장’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은 5월 말에서 6월이나 돼야 감염자가 정점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 모임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폐쇄조치 시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고, 실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도 있었다. 지난주 뉴스에서는 런던의 한 학부모가 학교에서 폐쇄 결정을 내지 않자 직접 학교로 가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정부는 감염률이 정점에 다다르기 전의 폐쇄조치는 무의미하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한 번 폐쇄를 하면 3개월 이상 지속해야 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상황. 직장을 다니는 급여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동시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 또한 부담스럽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지난 수요일, 학교 폐쇄조치 결정이 내려졌다.
요즘에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거리에 사람이 없다. 3월16일 기준, 런던의 대중교통 이용률이 전주 대비 지하철 19%, 버스 10% 감소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런던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단체 이벤트도 모두 잠정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콘서트나 이벤트 같은 행사나 모임(Gathering)도 금지 조치가 발표되었다. 이 때문에 런던에 오기 전부터 기대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의 프리미어 리그가 경기 3일 전에 ‘리그 일정 전면 중단’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티켓 구매 후 밤잠 설치며 기다렸는데 하필 직전에 취소가 되니 더욱 허탈했다. 하지만 영국인 친구들 앞에서 이런 불만은 얘기조차 꺼낼 수 없다. 그들에게 퇴근 후 펍에 모여 맥주 한잔과 함께 축구 경기를 즐기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상이다. 이 즐거움이 사라지니 요즘 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하다. 스포츠 경기와 문화 이벤트가 일상에서 차지하던 비중을 ‘리그 중단 결정’ 이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런던대학교로부터 e메일이 도착했다. 리딩 위크(부족한 과제 수행이나 독서량을 채우라며 학기 중간에 제공하는 방학)를 연장하고, 대면 수업은 중단한 채로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알게 된 친한 한국인 동생은 다음주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함께 학부 과정에 다니던 중국 학생들은 절반 가까이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석사 과정 동기들이 함께하는 채팅방에서는 연일 학교의 방침에 대해 격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학생들은 매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반면, 미국인 동기들은 그나마 미국보다는 영국이 안전하다며 자국에 대한 조롱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이렇듯 런던에 있는 유학생들은 학교의 수업 중단과 온라인 수업 전환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딩 위크 이후 수업환경 개선을 위한 교수들의 파업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가 문까지 닫으면 학생들의 수업받을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환불을 요구하던 분위기였는데,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제는 학교가 빨리 문을 닫아야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며 학교의 조치에 항의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에서 현재 가장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 인종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학생에 대한 지하철 내에서의 무차별 폭행 사건이 이슈가 되고, 해당 학생은 BBC에도 출연해 억울함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영국인들의 기저에 깔린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코로나19와 결합되면서 겉으로 표출되는 계기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처음 인종차별이 논란이 된 계기는 ‘마스크’ 때문이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주로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으로 오히려 홀대와 눈총을 받는 상황이 생길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을 유도하는 수단으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고 싶어서 거리로 나가서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학교 과제로 ‘마스크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라는 주제로 영상을 제작했다. 마스크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문화적 차이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우선은 코로나19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달랐다. 한국에서 발병률과 사망자 숫자가 치솟을 무렵만 하더라도 이곳 영국은 아시아 상황을 잘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해 무던했다. 대다수가 그저 감기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영국인들은 마스크를 사용하는 이유부터 달랐다. 기본적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이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영국 친구들은 ‘마스크는 병원과 같은 곳에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100년 전 있었던 스페인독감 이후에 ‘팬데믹’ 현상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유럽에서는 이제야 전염병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고, 이들 입장에서는 마스크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미디어에서도 여전히 공기 중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마스크는 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공포를 전염시키는 수단일 뿐이라고 알리고 있다. NHS도 손 씻기의 중요성 위주로 상황을 알리다 보니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밌는 것은 최근 들어 마스크를 쓴 유럽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교민사회는 매우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 두려운 상황이 진행되고 있어도 모두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 실시간으로 유학생 동생들, 한국에서 파견 나온 직장인들, 오랫동안 거주 중인 교민들과 연락 중이다. 각자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하게 유지하면서 주어진 수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이렇듯 대처 방안 및 현실적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정부와 NHS에 대한 불신이 퍼지면서 불안이 진행되고 미디어가 전해주는 소식이 공포를 확산하고 있는 현실. 나는 그 중심인 유럽, 그중에서도 런던에서 살고 있다. 스트레스는 많지만 일상의 삶을 평범하게 지속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상황도 언젠가는 끝이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NHS의 ‘손을 열심히 씻으세요’ 권고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10600035&code=940100#csidx25bceb76e6760cc9b6364fed13392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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