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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그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드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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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3회 작성일 22-04-21 22:17

본문

(위)아르세날레의 우크라이나관에 출품된 마코프의 설치작품 <고갈되는 샘 아쿠아 알타>.

(아래)20일 열린 우크라이나관 관계자들의 기자회견 현장. 맨 왼쪽에서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가 출품 작가인 파블로 마코프다.

우크라이나관 출품 작가 파블로 마코프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문화 지키려 왔다”
물 흘러내리는 설치조각 ‘고갈되는 샘’ 전시
러시아관은 출품 철회로 문이 굳게 닫혀

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늘은 세계 최고의 미술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드리워졌다.

지난 20일(현지시각) 낮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옛 조선소 터인 아르세날레 본전시장 옆 옛 창고 전시장 2층에 마련된 우크라이나 국가관에서 긴박한 분위기 속에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의 방어 정신과 정체성, 예술, 문화의 중요성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자리였다.

러시아군의 침공 전쟁에 따른 사망자와 부상자, 말할 수 없는 비극적 사건들을 기리기 위한 1분간의 침묵으로 회견은 시작됐다. 물이 아래로 깔때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설치조각 <고갈되는 샘 아쿠아 알타>를 만든 우크라이나 도시 하르키우의 작가 파블로 마코프는 조각의 역사, 본래의 의도, 작품의 의미,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앞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날인 2월24일부터 하르키우의 작업실에서 몇주간 은둔하다 위험을 무릎쓰고 가족들과 탈출을 감행해 최근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 출신이지만 크림반도 심페로폴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우크라이나 작가의 정체성을 갖게 된 그는 자신을 베네치아에 온 또 다른 우크라이나의 전사로 자리매김하면서 말했다. “원래 오지 않으려 했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곧 우크라이나의 문화를 없애려는 강압적 행위다. 나는 시민으로서 문화를 말살하려는 러시아의 의도를 알리고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출품작 <고갈되는 샘…>은 마코프가 27년 전인 1995년부터 드로잉 등을 통해 구상을 거듭하며 진화해온 작품이다. 물이 주역이 되어 운동하는 일종의 자연 키네틱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각형 모양을 이룬 78개의 청동 깔때기를 통해 물을 뿜어내지 않고 아래로 떨어뜨리는 플랫폼의 얼개를 보여준다. 이는 곧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과 삶의 숙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원래는 자원과 인간성의 고갈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구상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만월기에는 바닷물이 도시를 뒤덮으며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는 베네치아의 비극적인 환경이 어우러져 더욱 특별한 분위기의 작품이 됐다. 실제로 작가는 이런 맥락에서 베네치아의 만월기 바다 홍수를 일컫는 현지어인 ‘아쿠아 알타’를 제목에 추가했다.

59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우크라이나관은 마코프의 단독 전시이면서 마리아 란코, 리자베타 게르만, 보리스 필로넨코라는 세 독립 큐레이터가 협업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들은 비엔날레 아르테 2022에서 우크라이나를 대표하고 그래픽 예술가이자 판화가인 파블로 마코프의 작품 철학을 세계에 소개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뭉쳐 전시를 꾸렸다고 했다. 실제로 마리아 란코를 비롯한 큐레이터들은 2월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면서 청동 깔때기 일부를 부츠에 넣어 베네치아로 힘겹게 실어 날랐다.

우크라이나 문화정보정책부의 의뢰를 받은 이 전시관은 키이우의 네이키드 룸 갤러리 리자베타 게르만과 마리아 란코, IST 출판사 보리스 필로넨코의 수석 편집장이 관장한다. 관계자들은 각각 우크라이나를 떠나 베네치아 비엔날레로 가는 힘든 여정을 공유했다고 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조직위 쪽은 자르디니 국가관 구역 안에 우크라이나 광장을 조성해 침략에 반대하는 다채로운 연대 예술작업을 전시하고 퍼포먼스 등도 펼칠 예정이다. 또 시내 서북쪽의 스쿠올라 그란데에 별개의 공식연대 전시인 ‘우크라이나’를 열어 포연 속에서 쓴 우크라이나 작가의 일기와 각종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관과 연대 전시들이 ‘비장한 활기’를 띠는 반면 자르디니 공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시관 중 하나인 러시아관은 굳게 닫혔다. 올해 러시아관 전시를 기획했던 큐레이터 라이문다스 말라사우스카스와 작가 알렉산드라 수하레바, 키릴 사브첸코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은 하나의 국가에 대한 파괴를 넘어 유럽 문명 전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출품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관은 20세기 초 혁명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영묘를 지은 건축가 알렉세이 슈츄세프가 설계한 동화 속 궁전 같은 아르누보 스타일의 명품 건축물이다. 19~21일 살펴본 러시아관 주변은 화려한 외관과 달리 인적이 끊겼고, 무장 경관들이 정기 순찰을 계속 돌고 있어 절로 스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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