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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잃어버린 ‘아웃사이더 문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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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81회 작성일 21-01-09 02:20

본문

1980년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발견된 유럽 인종 여성 미라 ‘누란의 미녀’. 기원전 20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돼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명 교류의 기원을 앞당겼다. ⓒJ. P. Mallory/V. H. Mair·돌베개 제공

1990년대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지에는 ‘괴베클리 테베’라는 이름이 붙었다.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 척박한 언덕에서 발견된 것은 “제식을 행하던 장소로 추정되는 대규모 복합 시설”, 간단히 말해 ‘신전’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고학적 발굴은 지금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다. 최초의 신전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등장했다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베의 신전은 높이 15m의 언덕 꼭대기에 지어졌으며, “단독 건축물이 아니라 총 스무 개의 원형 건축물”로 이뤄져 있다. 현재까지 완전히 발굴된 것은 그중 네 개다. 신전을 지은 시기는 기원전 9600년부터 기원전 8800년 사이, 이른바 중석기 시대(기원전 1만년~기원전 7000년)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가 알고 있던 최초 신전들보다 대략 5000년 앞선다.


3800년 전 실크로드의 진정한 주역 ‘누란의 미녀’…정설로 믿어온 유럽 관점의 문명사 편견 허물어

책에서 소개하는 흥미진진한 고고학적 발굴은 이 밖에도 많다. 우리에게 윤후명의 소설 <누란의 사랑>의 모티브로 익숙한 어느 여성 미라는 1980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 누란(樓蘭)에서 발견됐다. 책에 따르면 “섬세하고 균형이 잘 잡힌 얼굴, 어깨까지 내려오는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여인은 죽는 순간까지 미소를 지은 것처럼 보인다. 마흔다섯 살로 추정되며, 매장 시기는 기원전 2000년에서 1800년 사이다.” 한데 이처럼 “유럽 인종의 특징을 지닌” 미라는 신장 자치구에서 1970년대부터 허다하게 발견됐다. “수백 구에 이르는” 그들은 “인도유럽인 중에서 동쪽으로 가장 멀리까지 이주한 이들”이다.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그 땅에 거주하면서 중국 문명과 교류했다. 책은 이 지점을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명 교류의 기원”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원전 1000년경의 실크로드보다 훨씬 앞선 시기다.

책에는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부제가 달렸다. 독일 태생의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인 저자 하랄트 하르만(75)은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문명사의 오솔길’을 하나씩 탐험한다. 저자는 인류 문명사의 주류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젖는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고고학”에서 출발한, 좀 더 좁혀 말하자면 “영국 고고학의 성과가 반영된” 그 관점을 철저하게 유럽 중심적이라고 비판한다. “강력한 국가 형식과 가부장제”라는 문명의 기준에 대해서도 거부한다. “제국주의 유럽”이 만들어낸 4대 문명설은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그런 관점에서 25개의 “아웃사이더 문명”을 소개한다. 저자는 “세계사의 의붓자식들”이라는 비유적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잊혀진 문명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다. 25개의 의붓자식들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는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하이델베르크인)가 이뤄냈던 ‘사냥 문화’다. 알려져 있듯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호모 사피엔스는 물론이거니와 네안데르탈인보다도 먼저 살았던, 32만년 전의 초기 인류다. 저자는 그들의 능숙한 사냥 솜씨와 집단적 협력을 설명하면서 1994년 독일 니더작센주 쇠닝겐에서 발견된 여덟 자루의 창과 야생마 한 마리의 유해를 소개한다. 소나무 혹은 가문비나무로 만든 창이 디자인적으로 매우 효율성이 높다는 점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개념적 사고”를 했다고 추론한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여덟 자루의 창과 말의 유해가 매우 질서정연하게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논리적 패턴’을 근거로 사냥이 끝난 후 진행된 제의를 상상한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이전에 추상적 사고와 종교적 관념이 존재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이어서 저자는 바이칼 호숫가에서 펼쳐진 3만년 전의 구석기 예술을 “유라시아 예술과 신화 전통의 초기 단계”로 소개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발견된 터키 아나톨리아의 차탈회위크 유적은 “주민이 1만명이 넘었던 인류 최고(最古)의 도시”였는데, 기원전 5800년 무렵 기후변화로 발생한 말라리아 창궐로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19세기 후반 발견된 도나우(Donau) 문명은 “대략 6000년 전쯤 세워진 유럽 최초의 고도 문명”이었으며, 로마의 융성은 테베레 강가에서 먼저 살았던 에트루리아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Roma)라는 명칭은 건국 시조 로물루스(Romul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나, 이 책은 에트루리아의 귀족 가문 ‘루마’(Ruma)에서 비롯했다는 쪽에 방점을 찍는다.



흑해 초원에서 발견된 여전사들의 무덤, 크레타섬에서 제례의 일환으로 행해졌던 최초의 투우, 로마 제국에 맞섰던 고대 팔미라 제국,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침략하기 전 아마존에 지어졌던 기하학 형태의 거대한 주거지 등 문명사의 변방에 존재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되살려내고 있는 책이다. 해제를 집필한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세계 문명사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린다”면서도 “우리가 보기에는 여전히 서양 중심적 서술이 곳곳에 보인다”고 일말의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1-11-10 05:27:30 문화포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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