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세상 룰이 바뀐들 다른 삶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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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일주일째 눈이 내리는 한겨울, 강가 교도소에 수감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조직원을 살해한 죄로 수감된 조직폭력배와 함께 생활하는 감방은 다른 방들보다는 약간 넓기에 ‘콘도’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이곳도 “우리에게 남은 인간다움을 6제곱미터에 압축해 넣는” 다른 감방과 다르지 않다. 남자는 인간다움을 말소하는 춥고 비좁은 공간에서, 그곳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잠이기 때문에 계속 잠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망자들과 함께한다. 소설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시절, “세 망자가 살아 있던, 이미 아득해진 시절”을 복기하며 이어진다.
프랑스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장폴 뒤부아(70)의 장편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지난해 아멜리 노통브 작품을 제치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대중성과 문학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이란 찬사와 함께 작가의 최고작이란 평을 받았다. 장폴 뒤부아는 2004년 프랑스 4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 앵테랄리에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며 제100회 페미나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장편 <프랑스적인 삶>을 비롯해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상속> 등 여러 편이 한국어로 번역돼 국내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작가다. 그가 작품 세계에서 몰두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 ‘삶에서 찾아오는 불행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이번 소설에도 담겼다.
장폴 뒤부아가 지난해 11월4일 공쿠르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수상작인 자신의 작품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장폴 뒤부아가 지난해 11월4일 공쿠르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수상작인 자신의 작품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감옥에서 그리워하며 회상하는
바깥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21세기에 적응 못하는 20세기 사람’
보통의 삶이 실패로 간주되는 세상
프랑스 국민작가 장폴 뒤부아의
개인 존엄을 보듬는 위로
주인공 폴 한센은 작가의 고향이자 현재도 살고 있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난 1955년생 남성이다. 소설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범죄자가 된 그가 감옥에서 끊임없이 옛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를 취하는데, 그가 그리워하는 감옥 밖에서의 삶은 따뜻하고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툴루즈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 이어진다. 영화관을 운영해온 그의 어머니는 68혁명 때 “그 지역 투쟁의 뮤즈로 변신”하는 등 시대 변화와 기꺼이 호흡하지만, 덴마크 최북단 소도시 출신의 개신교 목사인 그의 아버지는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이 ‘20세기를 사는 19세기 사람’이었듯, 폴 한센 역시 ‘21세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20세기 사람’으로 그려진다.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뒤 폴 한센은 자신이 수감된 감옥에서 불과 1㎞ 남짓 떨어진 몬트리올의 한 공동주택 ‘렉셀시오르 아파트’에서 26년간 관리인으로 일했다. “68가구로 이뤄진 작은 세계”이자 그 자체로 세상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 아파트에서 20세기의 그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건물의 관리인이자 수리공, 기술자였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가이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었다. 그는 아파트의 힘든 노동을 묵묵하게 해내고 입주민의 사사로운 부탁을 들어주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작은 사원의 선한 수호자로서 거의 모든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거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던 시절은 밀레니엄 이후로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음을 나누던 이웃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고, 새로 선출된 입주자 대표는 비용 절감만을 부르짖는다. 폴이 노력과 땀을 쏟아부으며 관리해온 아파트 수영장은 입주자가 아니라 고용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출입이 금지되고, 아파트 보수공사를 하던 외주업체 노동자가 추락사하자 사람들은 이 죽음의 책임을 놓고 계산기부터 두드린다.
이렇듯 모든 일에 손익을 따지는 새 시대는 고용된 관리인일 뿐인 폴과 다른 입주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점차 차별의 범위를 넓혀간다. 생계 수단임과 동시에 기쁨과 보람, 긍지이기도 했던 폴의 노동 역시 차츰 변화한다. “일은 우리가 했지 우리의 돈이 하지 않았어”라는 그의 말은 일해서 번 돈의 가치가 차츰 훼손돼가는 우리 사회에도 울림을 준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는 않는다. 책 제목이면서 폴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동시에 소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작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차례로 잃는 등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고 일자리마저 빼앗긴 채 급기야 감옥에 갇힌 한 평범한 사람이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때로 따뜻하게 그린다.
평생 목회자로 살다가 도박 충동으로 무너진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과 달리, 그의 아들 폴은 그를 밀어낸 세상의 편견과 냉담 속에서도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선택을 해나간다. 모두가 세상을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듯 변해가는 세상의 룰에 모두가 적응할 수도 없겠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변치 않아야 할 개인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재치 있는 인물과 유쾌한 서술로 풀어 읽는 재미 역시 선사하는 소설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91137001&code=960205#csidx5af921a907bb38194f741c189478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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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장폴 뒤부아(70)의 장편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지난해 아멜리 노통브 작품을 제치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대중성과 문학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이란 찬사와 함께 작가의 최고작이란 평을 받았다. 장폴 뒤부아는 2004년 프랑스 4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 앵테랄리에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며 제100회 페미나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장편 <프랑스적인 삶>을 비롯해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상속> 등 여러 편이 한국어로 번역돼 국내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작가다. 그가 작품 세계에서 몰두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 ‘삶에서 찾아오는 불행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이번 소설에도 담겼다.
장폴 뒤부아가 지난해 11월4일 공쿠르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수상작인 자신의 작품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장폴 뒤부아가 지난해 11월4일 공쿠르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수상작인 자신의 작품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감옥에서 그리워하며 회상하는
바깥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21세기에 적응 못하는 20세기 사람’
보통의 삶이 실패로 간주되는 세상
프랑스 국민작가 장폴 뒤부아의
개인 존엄을 보듬는 위로
주인공 폴 한센은 작가의 고향이자 현재도 살고 있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난 1955년생 남성이다. 소설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범죄자가 된 그가 감옥에서 끊임없이 옛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를 취하는데, 그가 그리워하는 감옥 밖에서의 삶은 따뜻하고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툴루즈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 이어진다. 영화관을 운영해온 그의 어머니는 68혁명 때 “그 지역 투쟁의 뮤즈로 변신”하는 등 시대 변화와 기꺼이 호흡하지만, 덴마크 최북단 소도시 출신의 개신교 목사인 그의 아버지는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이 ‘20세기를 사는 19세기 사람’이었듯, 폴 한센 역시 ‘21세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20세기 사람’으로 그려진다.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뒤 폴 한센은 자신이 수감된 감옥에서 불과 1㎞ 남짓 떨어진 몬트리올의 한 공동주택 ‘렉셀시오르 아파트’에서 26년간 관리인으로 일했다. “68가구로 이뤄진 작은 세계”이자 그 자체로 세상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 아파트에서 20세기의 그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건물의 관리인이자 수리공, 기술자였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가이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었다. 그는 아파트의 힘든 노동을 묵묵하게 해내고 입주민의 사사로운 부탁을 들어주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작은 사원의 선한 수호자로서 거의 모든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거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던 시절은 밀레니엄 이후로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음을 나누던 이웃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고, 새로 선출된 입주자 대표는 비용 절감만을 부르짖는다. 폴이 노력과 땀을 쏟아부으며 관리해온 아파트 수영장은 입주자가 아니라 고용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출입이 금지되고, 아파트 보수공사를 하던 외주업체 노동자가 추락사하자 사람들은 이 죽음의 책임을 놓고 계산기부터 두드린다.
이렇듯 모든 일에 손익을 따지는 새 시대는 고용된 관리인일 뿐인 폴과 다른 입주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점차 차별의 범위를 넓혀간다. 생계 수단임과 동시에 기쁨과 보람, 긍지이기도 했던 폴의 노동 역시 차츰 변화한다. “일은 우리가 했지 우리의 돈이 하지 않았어”라는 그의 말은 일해서 번 돈의 가치가 차츰 훼손돼가는 우리 사회에도 울림을 준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는 않는다. 책 제목이면서 폴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동시에 소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작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차례로 잃는 등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고 일자리마저 빼앗긴 채 급기야 감옥에 갇힌 한 평범한 사람이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때로 따뜻하게 그린다.
평생 목회자로 살다가 도박 충동으로 무너진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과 달리, 그의 아들 폴은 그를 밀어낸 세상의 편견과 냉담 속에서도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선택을 해나간다. 모두가 세상을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듯 변해가는 세상의 룰에 모두가 적응할 수도 없겠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변치 않아야 할 개인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재치 있는 인물과 유쾌한 서술로 풀어 읽는 재미 역시 선사하는 소설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91137001&code=960205#csidx5af921a907bb38194f741c189478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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