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 칼럼]바이러스는 공공의료를 무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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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코로나19 사태 통제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신천지발’ 환자의 급속 확산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적극적인 대처로 진정 국면에 접어든 덕이다. 해외로부터 드라이브 스루 등 ‘한국 모델’의 노하우 전수 요청도 잇따른다. 한국의 성과는 정부의 발 빠른 대처와 헌신적인 의료진, 성숙한 시민사회가 어우러진 결과다. 감염 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해 방역정책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끌어냈고, 이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로 이어졌다. 그러나 방역 인력 및 시스템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면 코로나19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량 검사만 해도 숙련된 인력과 복잡한 위생 설비 및 검사 재료가 확보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느 날 필요성을 느낀 지도자가 “합시다”라고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대혼란은 코로나19 진압의 첫 단계에서 대량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검사에서 누락된 환자들은 감염병 확산의 매개체가 되기 십상이다.
[조호연 칼럼]바이러스는 공공의료를 무서워한다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 조직으로 격상한 것도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그 덕에 질본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의 활약도 특별하다. 그는 차분하고 전문적인 발표와 설명으로 시민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워주고 있다. 그와 같은 방역 전문가가 ‘메르스 해고 폭풍’을 넘어 문재인 정부에서 방역 책임자로 올라선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사전 대비들은 의료공공성에서 나온다. 인터넷에 나도는 코로나19 치료비 명세서를 본 적 있는가. 900만원 넘는 치료비에 환자 부담은 4만원에 불과했다. 건강보험공단과 질본, 지자체 보건소가 치료비를 분담하기 때문에 이런 계산서가 가능해진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검사비는 국가 부담이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는 환자가 내야 한다. 최근 미국 교민들의 ‘코로나19 귀국 행렬’은 한국의 저렴한 의료비가 배경에 있다.
현재의 의료공공성 수준은 반(反)시장이나 포퓰리즘으로 보는 보수와의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결과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의료민영화가 시행 중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훨씬 더 끔찍했을 것이다. 시민 다수가 대량 검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고가의 비용 탓에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게 뻔하다. 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넘기자 구급차 한 번 타는 데 1000달러가 넘는 돈을 내야 하는 미국을 생각하면 당장 답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의료영리화 정책도 공공성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의료민영화 정책 못지않다.
민영화든 영리화든 자본이 의료서비스를 장악하게 되면 의료 행위는 수익창출 수단으로 전락한다. 정상 체온의 아기를 열이 있다고 속이고, 가벼운 상처에도 입원시킨 미국 병원그룹 HMA의 사례는 영리병원의 본질을 잘 설명해준다. 이런 영리병원이 돈이 안되는 감염병에 관심을 갖겠는가. 감염내과 수가는 여타 진료에 비해 낮기 때문에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있는 돈을 쓰기 일쑤다.
한국의 의료공공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공공병원 비중은 전체 병원의 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꼴찌다(2016년 기준). 공공병원 병상 비율(10.3%)도 마찬가지다. 의료공공 정책이 보수에 의해 매번 발목이 잡힌 탓이 크다. 현 정부 들어서도 공공보건의료 핵심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공공의대 설립법안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역시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 때 190명이던 감염내과 전문의는 지금 270명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적자라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논리가 아직도 한국 의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1만6000명이 숨지고 각국의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고 있다. 이만큼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도 드물다. 따지고 보면 ‘감염병 전쟁’은 일반 전쟁보다 잦다. 일반 전쟁은 70년 넘게 발생하지 않았지만 감염병 전쟁은 2000년대 들어서만 벌써 4번째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군대가 필요하다. 예방·검진·치료를 위한 의료 및 행정 인력과 시설, 조직을 육성해야 한다. 훈련과 교육도 빼놓으면 안된다.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들고, 평상시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위기 때는 진가를 발휘한다. 돈은 편의와 물질적 풍요를 제공한다. 의료공공성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 어디에 더 비중을 둬야 할지는 명백하다. 또다시 돈에 눈이 멀지 않기 바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42053005&code=990100#csidx13e024fcec7ae4e846beaccde226c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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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연 칼럼]바이러스는 공공의료를 무서워한다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 조직으로 격상한 것도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그 덕에 질본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의 활약도 특별하다. 그는 차분하고 전문적인 발표와 설명으로 시민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워주고 있다. 그와 같은 방역 전문가가 ‘메르스 해고 폭풍’을 넘어 문재인 정부에서 방역 책임자로 올라선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사전 대비들은 의료공공성에서 나온다. 인터넷에 나도는 코로나19 치료비 명세서를 본 적 있는가. 900만원 넘는 치료비에 환자 부담은 4만원에 불과했다. 건강보험공단과 질본, 지자체 보건소가 치료비를 분담하기 때문에 이런 계산서가 가능해진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검사비는 국가 부담이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는 환자가 내야 한다. 최근 미국 교민들의 ‘코로나19 귀국 행렬’은 한국의 저렴한 의료비가 배경에 있다.
현재의 의료공공성 수준은 반(反)시장이나 포퓰리즘으로 보는 보수와의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결과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의료민영화가 시행 중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훨씬 더 끔찍했을 것이다. 시민 다수가 대량 검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고가의 비용 탓에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게 뻔하다. 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넘기자 구급차 한 번 타는 데 1000달러가 넘는 돈을 내야 하는 미국을 생각하면 당장 답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의료영리화 정책도 공공성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의료민영화 정책 못지않다.
민영화든 영리화든 자본이 의료서비스를 장악하게 되면 의료 행위는 수익창출 수단으로 전락한다. 정상 체온의 아기를 열이 있다고 속이고, 가벼운 상처에도 입원시킨 미국 병원그룹 HMA의 사례는 영리병원의 본질을 잘 설명해준다. 이런 영리병원이 돈이 안되는 감염병에 관심을 갖겠는가. 감염내과 수가는 여타 진료에 비해 낮기 때문에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있는 돈을 쓰기 일쑤다.
한국의 의료공공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공공병원 비중은 전체 병원의 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꼴찌다(2016년 기준). 공공병원 병상 비율(10.3%)도 마찬가지다. 의료공공 정책이 보수에 의해 매번 발목이 잡힌 탓이 크다. 현 정부 들어서도 공공보건의료 핵심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공공의대 설립법안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역시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 때 190명이던 감염내과 전문의는 지금 270명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적자라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논리가 아직도 한국 의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1만6000명이 숨지고 각국의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고 있다. 이만큼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도 드물다. 따지고 보면 ‘감염병 전쟁’은 일반 전쟁보다 잦다. 일반 전쟁은 70년 넘게 발생하지 않았지만 감염병 전쟁은 2000년대 들어서만 벌써 4번째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군대가 필요하다. 예방·검진·치료를 위한 의료 및 행정 인력과 시설, 조직을 육성해야 한다. 훈련과 교육도 빼놓으면 안된다.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들고, 평상시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위기 때는 진가를 발휘한다. 돈은 편의와 물질적 풍요를 제공한다. 의료공공성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 어디에 더 비중을 둬야 할지는 명백하다. 또다시 돈에 눈이 멀지 않기 바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42053005&code=990100#csidx13e024fcec7ae4e846beaccde226c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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