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거리 두기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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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코로나19 국면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의 사회문화적 위상을 충분히 보여준 것 같다. ‘왜 이렇게 한국은 바이러스 대응을 잘해?’라는 질문에 ‘자가격리가 건국신화인 나라라서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로 간만에 크게 웃었다. 과연 그렇다. 우리는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티기로 마음을 먹는 곰의 자손들이다. 출발부터가 달라!
최근 TV에서 영화 <완벽한 타인>을 방영했는데,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자가격리와 함께 가정폭력이 급격히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그렇다. 아무리 부부나 가족이라도 적당한 거리와 약간의 비밀을 갖는 게 사람인데, 갑자기 너무 가깝게 있으면 사소한 오해가 실망을 낳고, 결국 싸우게 된다. 코로나19 국면이 끝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정법원에 갈 즈음이면 이혼율이 꽤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수는 줄어들고, 헤어지는 부부의 숫자가 늘면 출산율도 줄고, 인구는 더더욱 줄어들 것 같다. 혹시라도 바이러스는 사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맙소사, ‘사랑의 유람선’이 ‘바이러스 유람선’이 되어버렸다.
거리 두기는 사회 단위만이 아니라 국제 단위에서도 이루어질 것 같다. 경제의 근본적 요소는 생산과 무역이고, 20세기 이후 금융이 추가되었다. 1990년대 세계화 이후 무역보다는 금융을 훨씬 더 중요하게 보았지만, 무역을 하기 위해서 국제금융이 작동하는 것이지, 금융을 위해서 무역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기본은 변한 적 없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적으로 무역에 위기가 온 것은 1973년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이었다. 세계적으로 ‘영광의 30년’을 마감하게 되었고, 동구와의 경쟁을 붕괴시키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자원 선물시장 등 무역을 강화하는 요소만 있었지, 완화시키는 요소는 없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거리 두기는 생산과 수출 자체에 일시적 타격을 준다. 이후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가정·국가의 ‘거리 두기’로
경제의 질적 변화·구조 전환
무역 완화, 인하우스 강화에
강력한 디지털화 등 새 변화
민주적 수용해야 초일류 국가
‘오타키(autarchy)’라고 부르는 국가별 자급자족이 저강도로 진행될 것이다. 기초 제조업을 중국 등 외국으로 보내는 것이 번영이라고 하던 나라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프랑스의 명품 패션산업에서 손 소독제를 만들고, 자동차 공장에 미싱을 갖다 놓고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한다. 팬데믹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소위 ‘바이러스 산업’은 아웃소싱의 반대인 오타키 흐름으로 갈 것이다. 평소에 황사와 미세먼지로 단련된 한국도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수급의 어려움 때문에 정권이 흔들렸다. 프랑스 뉴스에서 중국을 출발한 마스크가 벨기에의 공항에 내려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면서 트럭에 실린 채 달리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말한 무역의 비교우위는 팬데믹 앞에서 잠시 정지한다.
미국 항공모함이 확진자 발생으로 항구에 멈춰 서고, 함장은 직위 해제되었다. 무역의 세포단위인 컨테이너선도 움직이기 어렵고, 마침 터진 유가 하락 때문에 유조선들이 수입국을 못 찾아 바다를 헤매는 중이다. 식량 수급을 걱정한 일부 국가는 식량 수출 금지로 들어갈 것이다. 강력한 세계화의 반대 흐름으로 오타키가 일부 제조업의 ‘인하우스’와 농업정책을 강화시킬 것이다. 남는 쌀, 뭐하러 농사 짓느냐고 하던 게 지난해 가을인데, 올 한 해, “쌀은 걱정 없다, 수입하는 밀이 문제지” 이런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반대쪽 흐름에 서게 되는 것이 관광산업 아닐까 싶다. 무서워서 비행기 타고, 배 타겠느냐? 원래 관광산업은 경기 민감도가 너무 높아서 보완적으로만 써야지 핵심 산업으로 배치하면 국가 혹은 도시가 너무 불안해진다. 동네 식당도 잘 못 가는 상황에서는 관광이 회복되기 어렵다. 유명한 호텔들이 통째 매물로 나오는 것, 그게 현실이다. 장사도 안 되지만, 길게 봐도 비전 없다는 거 아니겠는가.
경기 회복에 대해 V자형, U자형 혹은 L자형 논쟁이 한창이다. 나는 L자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정과 국가 단위의 ‘거리 두기로 생겨나는 경제의 질적 변화와 구조 전환’이라고 본다. 적응 못하는 국가는 이제 수직 낙하다. 글로벌 밸류 체인이라는 단어는 완화되고, 오타키가 강화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 제조업을 미처 다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트렌드를 만나게 되었다. 거리 두기의 적당한 일상화, 그게 강력한 팬데믹이 만드는 새로운 경제 아닐까 싶다. 무역의 완화, 인하우스의 강화, 강력한 디지털화, 이 정도로 변화를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나라가 초일류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권위주의적 ‘빅 브러더’ 방식으로 막 시켜대는 국가는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거리 두기 경제, 큰 변화가 시작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052108025&code=990100#csidxaca4733864c47b5bfd8416936333a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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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에서 영화 <완벽한 타인>을 방영했는데,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자가격리와 함께 가정폭력이 급격히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그렇다. 아무리 부부나 가족이라도 적당한 거리와 약간의 비밀을 갖는 게 사람인데, 갑자기 너무 가깝게 있으면 사소한 오해가 실망을 낳고, 결국 싸우게 된다. 코로나19 국면이 끝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정법원에 갈 즈음이면 이혼율이 꽤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수는 줄어들고, 헤어지는 부부의 숫자가 늘면 출산율도 줄고, 인구는 더더욱 줄어들 것 같다. 혹시라도 바이러스는 사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맙소사, ‘사랑의 유람선’이 ‘바이러스 유람선’이 되어버렸다.
거리 두기는 사회 단위만이 아니라 국제 단위에서도 이루어질 것 같다. 경제의 근본적 요소는 생산과 무역이고, 20세기 이후 금융이 추가되었다. 1990년대 세계화 이후 무역보다는 금융을 훨씬 더 중요하게 보았지만, 무역을 하기 위해서 국제금융이 작동하는 것이지, 금융을 위해서 무역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기본은 변한 적 없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적으로 무역에 위기가 온 것은 1973년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이었다. 세계적으로 ‘영광의 30년’을 마감하게 되었고, 동구와의 경쟁을 붕괴시키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자원 선물시장 등 무역을 강화하는 요소만 있었지, 완화시키는 요소는 없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거리 두기는 생산과 수출 자체에 일시적 타격을 준다. 이후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가정·국가의 ‘거리 두기’로
경제의 질적 변화·구조 전환
무역 완화, 인하우스 강화에
강력한 디지털화 등 새 변화
민주적 수용해야 초일류 국가
‘오타키(autarchy)’라고 부르는 국가별 자급자족이 저강도로 진행될 것이다. 기초 제조업을 중국 등 외국으로 보내는 것이 번영이라고 하던 나라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프랑스의 명품 패션산업에서 손 소독제를 만들고, 자동차 공장에 미싱을 갖다 놓고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한다. 팬데믹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소위 ‘바이러스 산업’은 아웃소싱의 반대인 오타키 흐름으로 갈 것이다. 평소에 황사와 미세먼지로 단련된 한국도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수급의 어려움 때문에 정권이 흔들렸다. 프랑스 뉴스에서 중국을 출발한 마스크가 벨기에의 공항에 내려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면서 트럭에 실린 채 달리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말한 무역의 비교우위는 팬데믹 앞에서 잠시 정지한다.
미국 항공모함이 확진자 발생으로 항구에 멈춰 서고, 함장은 직위 해제되었다. 무역의 세포단위인 컨테이너선도 움직이기 어렵고, 마침 터진 유가 하락 때문에 유조선들이 수입국을 못 찾아 바다를 헤매는 중이다. 식량 수급을 걱정한 일부 국가는 식량 수출 금지로 들어갈 것이다. 강력한 세계화의 반대 흐름으로 오타키가 일부 제조업의 ‘인하우스’와 농업정책을 강화시킬 것이다. 남는 쌀, 뭐하러 농사 짓느냐고 하던 게 지난해 가을인데, 올 한 해, “쌀은 걱정 없다, 수입하는 밀이 문제지” 이런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반대쪽 흐름에 서게 되는 것이 관광산업 아닐까 싶다. 무서워서 비행기 타고, 배 타겠느냐? 원래 관광산업은 경기 민감도가 너무 높아서 보완적으로만 써야지 핵심 산업으로 배치하면 국가 혹은 도시가 너무 불안해진다. 동네 식당도 잘 못 가는 상황에서는 관광이 회복되기 어렵다. 유명한 호텔들이 통째 매물로 나오는 것, 그게 현실이다. 장사도 안 되지만, 길게 봐도 비전 없다는 거 아니겠는가.
경기 회복에 대해 V자형, U자형 혹은 L자형 논쟁이 한창이다. 나는 L자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정과 국가 단위의 ‘거리 두기로 생겨나는 경제의 질적 변화와 구조 전환’이라고 본다. 적응 못하는 국가는 이제 수직 낙하다. 글로벌 밸류 체인이라는 단어는 완화되고, 오타키가 강화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 제조업을 미처 다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트렌드를 만나게 되었다. 거리 두기의 적당한 일상화, 그게 강력한 팬데믹이 만드는 새로운 경제 아닐까 싶다. 무역의 완화, 인하우스의 강화, 강력한 디지털화, 이 정도로 변화를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나라가 초일류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권위주의적 ‘빅 브러더’ 방식으로 막 시켜대는 국가는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거리 두기 경제, 큰 변화가 시작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052108025&code=990100#csidxaca4733864c47b5bfd8416936333a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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