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누진소유세’를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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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새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불평등 대안으로 제시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논쟁을 부르는 학자다. 2013년 그는 자국에서 펴낸 <21세기 자본>이란 연구서를 통해 20세기 후반으로 올수록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에 비해 자본을 바탕으로 증식시키는 소득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분석했다. ‘돈이 돈을 번다’는 세간의 인식을 역사와 통계를 통해 입증하며 우리 시대의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6년 만에 그는 또다시 불평등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였다. 더 방대한 분량만큼 분석의 대상과 규모도 크게 늘어난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제시한 대안을 두고 세계 곳곳에서 호응과 반박이 다시 한 번 뒤따르고 있다.
국내에서 <21세기 자본>이 원서 출간 이후 1년 뒤 번역돼 나온 것처럼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자본과 이데올로기> 역시 지난 5월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6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피케티 교수가 말하는 구조적·세계적인 차원의 불평등 문제는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부각된 이슈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바로 코로나19의 전 지구적인 확산 사태다. 피케티 교수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프랑스 언론 <르몽드>에 기고한 글이 국내 번역판 부록에 실린 것도 이와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기고에서 “이번 위기는 전 세계의 가장 부유한 경제 행위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전 세계가 나눠 가질 보편적 권리에 따라 재원을 마련해 세계 주민들의 공공보건 및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을 고려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은 신간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을 압축해 보여준 부분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서 부를 재분배하라’는 주문은 의미심장하다. 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기 이전에 탈고됐지만, 국경을 넘어 전파되는 코로나19를 예견한 듯 불평등에도 국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해법을 제시하는 범위를 넓힌 만큼 적용 과정에서의 강도도 높다. 더 많이 벌고 더 막대한 자산을 가진 계층일수록 자신의 소유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누진소유세’라 부를 수 있는 강력한 조세 대책이다.
‘국경을 넘어서 부를 재분배하라’
그 예시로 드는 정책을 국내 실정에 맞게 이름 붙이면 ‘청년기본자산’ 정도가 된다.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약 1억60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어떠냐는 급진적 주장이다. 이 액수는 유럽의 성인 1인당 평균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를 기준으로 셈했다. 물론 이 대안은 학자인 피케티 교수가 현재의 불평등을 교정하려면 어떤 식으로 얼마나 재분배가 일어나야 할지를 두고 일종의 사고실험을 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 자신도 당장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강도는 훨씬 낮지만 같은 맥락의 주장은 줄곧 나왔다. 다소 추상적인 피케티 교수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찾아갈 안내도를 그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어판 해제를 쓴 경제학자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은 “피케티 교수가 내놓은 대안이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처방이 생소하기 때문에 생긴 인상일 뿐 장기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을 설득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선거제도 등 전방위적인 개혁이 불평등 개선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5일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가 내놓은 ‘입법·정책과제’에도 자산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부동산 보유세율을 1%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피케티 교수가 분석하는 것처럼 자산이 부유층에 갈수록 쏠리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자산 보유액 상위 5%가 전체 자산의 50%를, 그리고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5%가량을 소유하고 있어 특히 자산불평등 정도가 심각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은 “국내의 민간보유 부동산 시가총액 대비 부동산 보유세율이 0.16%로 0.44%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보유세율도 0.8%로 OECD 평균 1.1%에 미치지 못한다”며 “21대 국회 임기 중에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GDP 대비 1%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 대선 후보들도 ‘누진적 자산세’ 주장
어떤 세금이든 세율을 높여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은 해당 세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의 거센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정은 비슷하지만, 미국은 정치권에서 강도 높은 ‘누진적 자산세’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촉발되면서 여론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확보한 대의원수로 2·3위에 오른 버니 샌더스·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이 내놓은 안이 그것이다. 특히 샌더스는 100억 달러 이상 구간에서 한계세율을 8%까지 적용하는 강화된 누진자산제 도입안을 제안했고, 워런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 밖으로 떠나는 경우에 대비해 국경을 넘어 모든 자산에 과세하는 안을 내놓으면서 주목받았다.
비록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유력해진 상태지만 누진자산세와 관련된 논의는 여전히 활발하다. 에마뉘엘 사에즈·가브리엘 주크만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경제학과 교수가 운영 중인 ‘이젠 조세정의(Tax Justice Now)’라는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피케티 교수와 함께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공동집필한 두 교수는 자산·소득 상위층의 실효세율이 점차 낮아져 오히려 저소득층과 중산층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다고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세계 최고의 갑부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국 최고 자산가들에게 강화된 자산세를 적용했을 경우 이들의 자산이 얼마나 줄었을지를 분석한 연구다.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워런 버핏(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 미국 최고 부자 10인이 소유한 총자산은 2018년 기준 7297억 달러로 추계되지만, 샌더스 연방의원이 제안한 누진자산세 세율이 1982년부터 시행했다고 가정하면 이들의 총자산 추정치는 1640억 달러로 크게 낮아진다. 우리 돈으로 688조원이 넘는 돈이 세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셈이다.
남는 문제는 결국 이러한 근본적인 대안이 실제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과정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온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 자체에 대한 피케티 교수의 연구와 문제 제기는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대책과 처방을 두고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수렴할 수 있을지 의문도 남기 때문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불평등 현상에 대한 연구 자체와는 별개로, 근본적으로 가치판단이 개입돼 내놓은 피케티 교수의 처방에 대해선 각기 다른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하나의 논의의 장에 모일 가능성조차 낮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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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4&art_id=202006051649361#csidxb0043aec6181402bdb3d02cf79c1e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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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논쟁을 부르는 학자다. 2013년 그는 자국에서 펴낸 <21세기 자본>이란 연구서를 통해 20세기 후반으로 올수록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에 비해 자본을 바탕으로 증식시키는 소득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분석했다. ‘돈이 돈을 번다’는 세간의 인식을 역사와 통계를 통해 입증하며 우리 시대의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6년 만에 그는 또다시 불평등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였다. 더 방대한 분량만큼 분석의 대상과 규모도 크게 늘어난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제시한 대안을 두고 세계 곳곳에서 호응과 반박이 다시 한 번 뒤따르고 있다.
국내에서 <21세기 자본>이 원서 출간 이후 1년 뒤 번역돼 나온 것처럼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자본과 이데올로기> 역시 지난 5월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6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피케티 교수가 말하는 구조적·세계적인 차원의 불평등 문제는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부각된 이슈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바로 코로나19의 전 지구적인 확산 사태다. 피케티 교수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프랑스 언론 <르몽드>에 기고한 글이 국내 번역판 부록에 실린 것도 이와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기고에서 “이번 위기는 전 세계의 가장 부유한 경제 행위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전 세계가 나눠 가질 보편적 권리에 따라 재원을 마련해 세계 주민들의 공공보건 및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을 고려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은 신간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을 압축해 보여준 부분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서 부를 재분배하라’는 주문은 의미심장하다. 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기 이전에 탈고됐지만, 국경을 넘어 전파되는 코로나19를 예견한 듯 불평등에도 국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해법을 제시하는 범위를 넓힌 만큼 적용 과정에서의 강도도 높다. 더 많이 벌고 더 막대한 자산을 가진 계층일수록 자신의 소유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누진소유세’라 부를 수 있는 강력한 조세 대책이다.
‘국경을 넘어서 부를 재분배하라’
그 예시로 드는 정책을 국내 실정에 맞게 이름 붙이면 ‘청년기본자산’ 정도가 된다.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약 1억60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어떠냐는 급진적 주장이다. 이 액수는 유럽의 성인 1인당 평균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를 기준으로 셈했다. 물론 이 대안은 학자인 피케티 교수가 현재의 불평등을 교정하려면 어떤 식으로 얼마나 재분배가 일어나야 할지를 두고 일종의 사고실험을 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 자신도 당장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강도는 훨씬 낮지만 같은 맥락의 주장은 줄곧 나왔다. 다소 추상적인 피케티 교수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찾아갈 안내도를 그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어판 해제를 쓴 경제학자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은 “피케티 교수가 내놓은 대안이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처방이 생소하기 때문에 생긴 인상일 뿐 장기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을 설득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선거제도 등 전방위적인 개혁이 불평등 개선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5일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가 내놓은 ‘입법·정책과제’에도 자산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부동산 보유세율을 1%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피케티 교수가 분석하는 것처럼 자산이 부유층에 갈수록 쏠리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자산 보유액 상위 5%가 전체 자산의 50%를, 그리고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5%가량을 소유하고 있어 특히 자산불평등 정도가 심각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은 “국내의 민간보유 부동산 시가총액 대비 부동산 보유세율이 0.16%로 0.44%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보유세율도 0.8%로 OECD 평균 1.1%에 미치지 못한다”며 “21대 국회 임기 중에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GDP 대비 1%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 대선 후보들도 ‘누진적 자산세’ 주장
어떤 세금이든 세율을 높여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은 해당 세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의 거센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정은 비슷하지만, 미국은 정치권에서 강도 높은 ‘누진적 자산세’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촉발되면서 여론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확보한 대의원수로 2·3위에 오른 버니 샌더스·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이 내놓은 안이 그것이다. 특히 샌더스는 100억 달러 이상 구간에서 한계세율을 8%까지 적용하는 강화된 누진자산제 도입안을 제안했고, 워런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 밖으로 떠나는 경우에 대비해 국경을 넘어 모든 자산에 과세하는 안을 내놓으면서 주목받았다.
비록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유력해진 상태지만 누진자산세와 관련된 논의는 여전히 활발하다. 에마뉘엘 사에즈·가브리엘 주크만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경제학과 교수가 운영 중인 ‘이젠 조세정의(Tax Justice Now)’라는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피케티 교수와 함께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공동집필한 두 교수는 자산·소득 상위층의 실효세율이 점차 낮아져 오히려 저소득층과 중산층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다고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세계 최고의 갑부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국 최고 자산가들에게 강화된 자산세를 적용했을 경우 이들의 자산이 얼마나 줄었을지를 분석한 연구다.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워런 버핏(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 미국 최고 부자 10인이 소유한 총자산은 2018년 기준 7297억 달러로 추계되지만, 샌더스 연방의원이 제안한 누진자산세 세율이 1982년부터 시행했다고 가정하면 이들의 총자산 추정치는 1640억 달러로 크게 낮아진다. 우리 돈으로 688조원이 넘는 돈이 세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셈이다.
남는 문제는 결국 이러한 근본적인 대안이 실제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과정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온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 자체에 대한 피케티 교수의 연구와 문제 제기는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대책과 처방을 두고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수렴할 수 있을지 의문도 남기 때문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불평등 현상에 대한 연구 자체와는 별개로, 근본적으로 가치판단이 개입돼 내놓은 피케티 교수의 처방에 대해선 각기 다른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하나의 논의의 장에 모일 가능성조차 낮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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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4&art_id=202006051649361#csidxb0043aec6181402bdb3d02cf79c1e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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